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데 이어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 올 초에만 해도 ‘선방’했던 위안화 가치가 맥을 추지 못하면서 그 불똥이 한국 및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신흥국에 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한국 원·달러 환율은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온 1350선을 넘긴데 이어 1360선까지 돌파하는 상승세를 지속,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의 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중국 위안화는 지난 8월까지 6개월 연속해 가치가 하락(위안·미국 달러 환율 상승)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인 2018년 10월 이후 최장 기록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주 말 위안·달러 환율은 달러당 6.9위안을 찍으며 미·중 무역분쟁이 한창이던 2020년 8월 이후 최고치(위안화 가치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세계 시장이 흔들렸던 지난 2월 말만 해도 위안·달러 환율은 6.4위안 이하였지만 4월에는 6.7위안을 넘기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위안·달러 환율 상승은 위안화 가치 하락을 뜻한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 일본 노무라홀딩스, 프랑스 크레디트 아그리콜 등은 올해 위안·달러 환율이 7위안을 곧 돌파하며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이어갈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중국이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내린 데다 청두 등 도시 봉쇄, 헝다그룹 등 부동산기업들의 파산 위험 고조 등에 따른 중국 경기 침체 우려가 반영돼서다.
전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이어 중국 위안화 약세가 인근 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신흥국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중국과 수출 경쟁을 벌이는 나라들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신흥국들이 중국에 맞서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 절하에 나설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스웨덴 금융회사 스칸디나비스카 엔스킬다 은행(SEB)의 페르 함마르룬드 신흥시장 분석가는 “위안화 가치가 더 하락하면 다른 신흥국 통화의 평가절하 압력도 가중할 것”이라며 “중국과 직접 수출 경쟁을 벌이는 나라들에 특히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와 소시에테제네랄은 위안화 약세 때문에 절하 압력을 받을 통화로 한국의 원화와 대만 달러, 태국 바트, 말레이시아 링깃, 남아프리카 랜드를 꼽았다. SEB는 멕시코, 헝가리, 루마니아, 터키 통화를 지목했다. 피닉스 케일런 소시에테제네랄 리서치부문 대표는 “최근 10년 동안 중국과 신흥국 사이 무역과 금융 관계가 강화됐다”며 “이 때문에 신흥국 통화와 중국 위안화의 탈동조화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120일 동안 역외 위안화 가치와 신흥국 통화 가치 사이 상관관계는 2년 내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