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와 이사의 중요성[이창환의 PEF처럼 주식하기]

입력 2022-09-07 17:47
수정 2022-09-14 13:13
이 기사는 09월 07일 17:4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필자가 IB와 PEF에 주니어로 근무하던 시절 한가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경영권 바이아웃이 아닌 소수지분 투자 건에서 PEF들이 주주 간 계약을 통해 지분율에 비례한 숫자의 이사를 선임할 권리를 요청하거나, 최소 1명의 이사를 선임할 권리를 반드시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항상 상대방과 치열한 협상을 해야만 했다. 어차피 이사회의 과반을 확보해야 이사회 안건을 처리할 수 있고, 투자자 측 이사 한명이 이사회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이사회 안건 통과 여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는데,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조항인지 한동안 잘 이해하지 못했다.

상장주식 투자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지배주주가 임명하지 않은 이사회 멤버(감사포함)가 한명이라도 있게 되면 이사회의 운영에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은 내가 투자한 회사의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이사들을 임명하고 급여를 주는 주체인 주주들을 위해 충실히 활동을 잘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다. 많은 기업의 경영진들도 주식회사에서 이사의 역할과 책임이 매우 크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주식회사는 다수의 주주가 공동으로 자본을 출자해 목적사업을 영위하고,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지분비율대로 나누기 위한 법적 결사체다. 수많은 주주가 주식회사를 직접 경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주주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를 임명해 경영을 맡기는 구조로 돼 있다. 표결이 필요한 안건이 아닌 대부분의 주요한 경영 의사결정은 이사들이 이사회 승인을 통해 처리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해 대신 국가를 운영하도록 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 당이 의석을 나눠 갖는 국회와는 달리 대부분의 상장회사는 지분율이 20%에 불과한 지배주주가 단독으로 모든 이사를 임명하게 된다.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은 대체로 분산돼 있고, 지배주주 이외에 다른 주주가 이사를 추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정기주주총회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는 주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제도가 있지만 사외이사도 결국 지배주주가 지배주주의 입장에서 표를 행사해줄 사람들을 모셔 와서 임명하는 것이기에 사실상 의미는 없다. 이렇게 지배주주에 의해 100% 임명된 이사회는 본인을 임명해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등 해외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주주들이 집단소송 등을 통해 이사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따른 피해를 직접 구제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주주들이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적 견제 장치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상장 주식회사의 많은 이사가 그동안 법적 책임에 대한 큰 우려 없이 평화롭게 이사직을 수행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주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하나 있다. 주주들의 힘으로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 1인을 임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2020년 12월 상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3% 룰 때문이다. 3% 룰이란, 여러 이사 중 감사위원이 될 이사 1명은 주주총회 시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하고, 이때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배주주가 아니어도 충분히 표 대결을 통해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임명할 수 있다. 감사위원회를 채택하지 않은 기업의 경우에는 상법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감사 선임 때 3% 룰을 활용할 수 있다.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이사회 멤버가 한 명이라도 있게 되면, 지배주주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회사와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반할 수 있는 안건에 대해 이사회에서 실질적인 토론을 벌일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이사회에서 아무런 질문이나 토론 없이 통과되었을 안건에 대한 논의 과정이 모두 이사회 의사록에 남게 된다. 나중에 주주들은 회의록을 통해 이사회의 의사 결정이 어떤 논리로 이뤄졌는지, 합리적으로 납득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 등 여러 법적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회사 및 채권자나 주주에 대해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이사회에서 위와 같이 제대로 된 토론 및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과거와는 다르게 큰 책임감을 가지고 이사회 안건 심의와 의사결정에 임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모든 상장회사에 지배주주가 추천하지 않은 독립적 이사(혹은 감사)가 한명씩 선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의 기본적인 거버넌스 투명성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한명으로는 주도적인 변화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회사나 주주의 이익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3% 룰이 있어도 일반주주가 독립적인 이사와 감사를 선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소수지분을 가진 여러 투자자 중 누군가 나서서 좋은 이사 혹은 감사 후보를 찾아야 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사 혹은 감사 후보의 선임을 위해 뛰어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생긴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국내외 투자자들에 의해 이런 시도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기업의 임원 입장에서는 주식회사 등기이사의 무거운 법적 책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배주주가 등기이사로 본인을 임명해 주었다 하더라도, 일단 이사가 되는 순간부터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이사회 내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멤버가 없다 하더라도, 나의 의사결정이 과연 회사를 위한 것인지, 지배주주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