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수사가 처음이라 공부가 필요하다면서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6000만원대 코인 사기를 당한 직장인 김모씨(34)가 황당해하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피해자들이 사기꾼들한테 돈을 가져다 바치고 있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암호화폐가 주식, 부동산 같은 ‘투자자산’으로 떠오른 지는 꽤 됐다. 사기 사건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반복되는 수사 지연에 피해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 게 언젠데 아직도 그대로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사기 수법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기꾼들은 가짜 거래소를 차려놓고 SNS 오픈채팅방으로 접근한다. “알려주는 대로 코인 가격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하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현혹하고, 몇 차례 푼돈 수익을 실현해주며 신뢰를 쌓다가 고액을 입금했을 때 본색을 드러내는 것도 판박이다. 김씨는 “50만원을 투자했는데, 금세 10만원 정도 수익이 나는 것을 보고 4000만원까지 넣게 됐다”며 “원금과 수익금을 출금하려니 본인인증 비용으로 수백만원, 소득세로 출금액의 40%까지 요구해 2000만원가량을 추가로 입금했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사관 배정에만 몇 달이 걸리기 일쑤다. 1억원 규모 코인 사기를 당한 박모씨(46)는 지난 5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했지만 2개월이나 방치됐다가 결국 타지역으로 사건이 이관됐다. 박씨가 국민신문고에 수사가 지연된다며 민원을 넣자 그제야 수사관이 배정됐다. 3억원을 날린 정모씨(37)는 “지난달 12일 수사관에게 메신저로 수사 진행 상황을 문의했는데 1주일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부족하고 그나마 업무 과중으로 수사할 여력이 없다는 게 경찰의 해명이다.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해 수사권 조정 이후 절차가 늘어나고 업무도 많아진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금융당국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은 “소관 법령이 없어 현재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곳은 경찰과 같은 수사당국뿐”이라는 입장이다. 경찰과 금융당국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피해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한 피해자는 “아무리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해도 엄연한 사기 사건인데 수사당국에 전문가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법과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마저 외면한다면 피해자 구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법 체계를 비웃는 사기꾼들의 놀이터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