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 거물들, 잇단 의문사…올해만 벌써 8번째

입력 2022-09-03 19:18
수정 2022-10-01 00:01

러시아 에너지 업종 거물들이 잇따라 사망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CNN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에너지 거물 최소 8명이 사망했다. 이 중 5명은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과 그 자회사, 2명은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가스기업 루크오일 출신이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일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67) 회장이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현지 언론은 관계자를 인용해 "마가노프 회장은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했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루크오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 초 성명을 통해 전쟁을 비극으로 표현하면서 휴전과 대화를 촉구했던 바다. 그 다음 달 바기트 알렉페로프 회장이 사임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마가노프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으나, 로이터통신은 마가노프 회장 지인 2명의 주장을 토대로 그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러시아 기업인이 의문의 사고로 숨진 것은 마가노프 회장까지 올해 들어 9번째다.

앞서 지난 1월 가스프롬 투자 자회사에서 운송 부문 책임자를 맡았던 레오니드 슐만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사기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후 가스프롬 고위 관리자인 알렉산드르 튜라코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음 날인 2월 25일 자택 차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4월 18일엔 가스프롬 자회사인 가스프롬뱅크의 부회장 블라디슬라프 아바예프가 모스크바에서, 그다음 날엔 가스프롬이 투자한 러시아 2대 가스기업 노바텍의 전임 최고경영자인 세르게이 프로토세냐가 스페인에서 각각 가족과 함께 숨졌다.

5월에는 가스프롬 소유의 리조트 크라스나야 폴랴나 임원인 안드레이 크루코프스키가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했고, 루크오일에서 고위 간부를 맡았던 알렉산드르 수보틴도 같은 달 무속인을 방문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7월에는 가스프롬과 거래하던 재계 거물 유리 보로노프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영장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대부분 외부에 알려진 사인은 극단적 선택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에 정권의 미움을 받아 살해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러시아 민간 에너지 기업들은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최근 서방의 경제 제재 직격탄을 맞아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특히 가스프롬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알렉세이 밀러가 이끄는 회사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수출을 주도하며 러시아의 전비를 충당하고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를 떠난 가스프롬뱅크의 전 임원은 CNN에 "아바예프는 프라이빗 뱅커로 VIP 고객의 큰 자금을 굴리는 일을 했다"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뭔가를 알게 돼 위험을 초래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