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수명이 짧아졌다. 1950년대 기업 평균 수명은 약 60년이었다. 반면 오늘날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기업이 변화하는 속도가 어지러울 만큼 빠른 탓이 아니다. 경쟁자의 엄청난 혁신 탓도 아니다. 세상에 발맞춰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근시안적 관점이 만연한 탓이다. 주주 자본주의와 근시안적 경영비즈니스 세계에 근시안적 관점이 생겨난 것은 불과 50년 전이다. 《인피니트 게임》의 저자 사이먼 시넥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1970년 기고문이 그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통해 기업에 주주가 최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사유재산 제도하에서 경영자는 주주의 피고용인이므로 주주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책임이란 사회의 기본 규칙을 지키면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정의했다. 즉,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부의 축적이며 그 돈은 주주 몫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시각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더 만연해져 ‘주주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린 스타우트 코넬대 교수는 그의 책 《주주 가치의 신화》를 통해 주주 자본주의가 기업가의 역할을 변모시켰다고 설명한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기업들은 부자는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투자할 기회를 제공했다. 기업 임원들은 스스로를 주주 외에도 채권자, 협력업체, 직원,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관리인으로 여겼다. 하지만 프리드먼 이후 임원들은 기업 소유주에게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기업과 은행의 성과급 제도는 점점 더 단기 성과에 집중했고,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익을 몰아줬다. 회사가 직원을 보살폈고, 직원이 회사를 돌보는 문화도 사라졌다. 어느 순간 매년 단행되는 대규모 정리해고가 괜찮은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대의명분의 부재근시안적 사고가 만연한 원인 중 하나로 주주 자본주의를 거론하지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핵심에는 주주 자본주의 남용으로 기업 운영의 대의명분이 사라졌다는 점이 놓여 있다. 사람들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돈을 쓰는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해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기업은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의 삶을 더 편하게 혹은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기업은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자원이 많아진다. 이 과정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보완되고 완성되는 시장주의고, 이 같은 철학이 자본주의다. 오로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로 측정되는 경제적 성과가 자본주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헨리 포드가 “오로지 돈만 버는 기업은 형편없는 기업”이라고 일갈한 이유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대의명분을 잊어버렸다. 특히 오랜 전통을 가진 레거시 기업들이 그렇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생산활동이 세상에 어떤 이익을 주는지 잊어버린 듯하다. 여기서 대의명분이란 ‘긍정적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다. 무엇을 위해 우리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대의명분이 있다면 일이 재밌는 날도, 재미없는 날도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올바른 대의명분은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희생정신을 갖게 되며, 시대가 한참 흘러도 같은 목적이 공유된다. 대의명분과 디지털 전환
무엇을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지가 명확하다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과거 음반 회사들이 스스로를 레코드나 테이프, CD 판매자가 아니라 ‘음악공유자’로 정의했다면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의 주인공이 됐을지 모를 일이다. 오늘날 디지털 전환이 맹목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전환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어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무언가를 위한 수단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거꾸로 디지털 전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고민의 순서가 바뀐 탓에 엉뚱한 답을 찾기 일쑤다. 레고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매년 더 많은 어린이가 창의적인 놀이를 하도록 만들겠다는 노력 때문이지, 정교한 분기 실적 목표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고민할 때 나에게 좋은 것도 많아진다. 디지털 전환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