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빚 부담을 줄여주는 ‘새출발기금’이 다음달 공식 출범을 앞두고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연체 3개월 이상 부실차주의 부채를 최대 80%(취약계층은 최대 90%)까지 감면해준다는 것에 대해 “성실 상환자만 바보가 됐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새출발기금이 이렇게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새출발기금의 원금 감면율이 신복위보다 10%포인트 높은 이유는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강제 영업 중단으로 억울한 피해를 본 만큼 기존 제도보다 지원을 늘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취약계층 부실이 금융회사 부실로 전이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는 효과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개인적으로 새출발기금의 취지와 부채 탕감 필요성에 공감한다. 다만 합리적인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부족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남는다.
▷김 위원장=부채 탕감은 정부가 마련한 125조원 규모 금융 민생 안정 대책의 일부인데,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새출발기금은 기존 시스템을 참고해 만든 것이지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이미 신복위나 법원 개인회생 같은 부채 탕감 시스템이 있다. 새출발기금같이 부실채권을 매입해 정리하는 메커니즘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외환위기 때부터 20년 넘게 하고 있는 일이다. 제도의 악용을 막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 먼저 아무나 빚 탕감을 신청할 수 없다.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있다.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받은 회사와 거래를 안 하는 것처럼 새출발기금 지원을 받으면 ‘꼬리표’도 남는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최근 한국경제신문에서 미국의 학자금 탕감 논란 관련 기사를 읽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주체들마다 입장이 다를 텐데 새출발기금도 마찬가지 같다.
▷김 위원장=국민들이 요새 많이 불안하신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빚을 내서라도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올랐고, 젊은 사람들은 가상자산 투자를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채가 누적된 상태에서 물가와 금리가 오르니까 다들 당혹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출발기금의 부채 탕감 논란이 더 커진 듯하다. 그런데 채무 탕감뿐 아니라 모든 정부 지원에 모럴해저드 요소가 있다. 갑자기 어려워진 증권사를 지원해줬을 때도 모럴해저드 논란이 있었다. 정부가 개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효용과 이에 따르는 부작용을 비교했을 때 긍정적인 게 많다면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취약계층의 부실 사태가 터지면 금융회사의 부실로 넘어간다. 정부가 예산을 써 정책 지원을 했기에 부실도 적고 금융회사가 더 돈을 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물가와 금리, 환율 모두 높은 ‘3고(高) 현상’이 우리 자본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지도 궁금하다.
▷김 위원장=금리가 올라가면 기업 수익성이 나빠지고 소비가 위축돼 자본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해외 투자자들은 투자 수익뿐 아니라 달러로 바꿔 나갈 때의 수익까지 계산하기 때문에 환율이 불안한 것도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사의 유동성과 손실 흡수 능력을 관리하고 있다. 제2금융권처럼 건전성이 취약한 곳은 충당금을 건실하게 쌓을 수 있도록 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도 지속하고 있다.
▷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하다 보면 경제주체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공감대 형성을 위한 토론의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 위원장=논의의 장을 마련해 전문가들과 자본시장 전반을 리뷰하고, 조금씩이라도 제도 개선을 해나가겠다. 똑같은 주주인데 소액주주가 대주주에 비해 권리 측면에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지 않은지 계속 지켜보고 있다. 카카오페이 주요 임원들이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대량 매도해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나. 기업의 내부자나 주요 경영진이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 팔 땐 공시를 하게 하는 방안과 공매도 같은 불공정거래 이슈를 살펴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새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얘기해달라. 민간 금융사뿐 아니라 정책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원칙도 필요할 것 같다.
▷김 위원장=금융이라는 게 범위가 넓다. 금융산업과 감독 시스템이 있고 인프라, 자본시장 등도 있다. 산업도 은행, 증권, 보험, 2금융 저마다 이슈가 다르다. 새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을 한 가지로 얘기하자면 ‘합리적인 제도 개선’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우리 금융산업이 디지털 방향으로 뻗어나가도록 개선하겠다고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정책금융기관도 (민간과) 똑같은 원칙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임충식 덴튼스리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예금보험공사 사장이나 여신금융협회장 등 감독·규제를 받는 기관의 장으로 있을 때 금융위나 금융감독원의 규제가 지나치다고 느꼈던 적이 짐작건대 많았을 것 같다.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해소해달라.
▷김 위원장=대통령께서 자꾸 자유와 민간의 혁신을 언급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자는 의미로 이해한다. 정부의 역할은 뼈대와 골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몸을 멋있게 하는 일은 민간이 한다. 가능하면 규제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겠다.
▷조일훈 한경 논설실장(사회)=(혁신 서비스에 대해 금융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김 위원장=규제 샌드박스의 심사를 맡는 ‘민관 합동 혁신금융심사위원회’가 있다. 제가 있고 민간위원장이 있는데, 민간위원장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할 계획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전문가 지원 등 도움을 많이 주는 방향으로 운영하겠다.
▷신희택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라임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되면서 (금융사의 설명의무 때문에) 은행에 가서 주가연계펀드(ELF)에 가입하려면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소위 나이 든 소비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인데, 고문 같은 절차라는 느낌이다.
▷김 위원장=금소법이라는 소비자 보호 관련 법이 만들어졌다는 건 큰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평가한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과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계속 보완해 나갈 것이다. 비대면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핵심 안내사항에 대해선 굵은 글씨로 표시하는 등 개선 방안을 계속 강구하고 있다. 더불어 라임 사태 같은 문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조직의 장이 내부통제에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인혁/이호기/박상용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