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입사 4개월 차인 A씨는 목요일이 어린이날이라 징검다리 연휴에 연차를 사용하고자 금요일에 연차를 사용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3년 차 선임이 “요즘은 위아래도 없나 봐. 배짱도 좋네, 신입이 휴가를 선점하고”라고 말합니다. A씨는 순간 얼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팀장님이 오후에 부르셨습니다. “샌드위치라고 휴가 신청을 했네요? 팀원들하고 상의는 했어요?”라고 하시더니, 팀원들과 상의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A씨는 결국 연차 신청을 취소했고, 팀장님과 3년 차 선임이 그날 휴가를 사용했습니다.
그 뒤로는 눈치가 보여 연차를 사용하려고 할 때 팀원들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선임은 “무슨 일 때문에 연차를 쓰냐?”, “입사한 지 몇 개월째냐, 연차휴가가 몇 개냐?”, “꼭 이번에 써야 하냐, 급한 일이 있냐?”, “그날 내가 휴가 쓰려고 했는데”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계약한 날에도 결국 같이 가드리지 못했고, 올 초 친구들과 약속한 여행도 함께 못 간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7월 말에 여름휴가를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이 되었습니다. 팀장님이 여름휴가는 7월 25일부터 8월 5일 사이에 3일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왕 그렇게 된 거 여름휴가를 포함해서 1주일 쉬면 되겠다고 했습니다. 2주 가까이 회사를 비울 수는 없지 않겠냐고 하면서 말이죠. A씨는 결국 여름휴가 시즌 내내 집에서 격리된 채 지내야 했습니다.
<판단>
“코로나에 걸려도 일합니다. K직장인이니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니,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여 PCR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상 출근을 지시하고,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격리기간동안 무급휴가로 처리되거나 정상 출근 또는 재택근무를 했다는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한 카드 회사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 문구가 유행한 지 20년도 더 지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연차휴가”라는 고용노동부 근무혁신 10계명도 무색한 2022년. “아프면 쉴 권리”라는 캠페인 구호조차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현실입니다.
서울특별시 시민인권보호관 인권침해 결정례 20신청-17,20 병합 사건에서도 연차휴가 사용에 관한 사례가 나옵니다. 피신청인이 직원들이 연차휴가를 사용하고자 할 때마다 “왜 사용하려고 하냐, 뭐 때문이냐”라고 물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피신청인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휴가를 낸다고 하면 왜 사용하는지, 급한 일인지 물었고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적은 없다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런데 참고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직원들이 연차를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사유를 물었고, 사유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워 ‘개인적인 사유’라고 대답을 하면 2~3차례 꼬치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연차휴가 사용 이유를 묻는 것은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사적영역 활동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행위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행위”라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연차휴가를 언제 사용할 것인지 그 시기를 지정할 권리는 해당 근로자에게 있습니다. 다만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시기를 변경할 수 있는데, ‘막대한 지장’이란 단순히 해당 근로자의 휴가 사용에 따른 업무 공백 발생이나 인원 부족 등의 사유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관리자 교육을 할 때, 이런 질문이 많이 나옵니다. “그럼 연차휴가 사용 이유를 묻는 것만으로도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겁니까? 업무상 이유로 물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 정도 질문도 못하면 어떻게 인사관리를 합니까?” 관리자가 관리 운영상 휴가에 따른 공백이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로 즉, 업무상 필요성에 따라 질문을 할 수는 있습니다. 혹시 급한 사유가 아니라면 휴가일을 조정해 줄 수 있는지를 묻거나 조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하는 질문 자체만으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연차휴가는 사전 승인제가 아니고, 특히나 사전 검열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같은 질문의 취지가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는 정도여야 합니다.
연차휴가 사용의 이유를 꼬치꼬치 묻거나 사생활 영역에 관한 공개를 요구하거나 휴가 사용일을 변경할 것을 강요, 지정하는 것, 또는 휴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끔 눈치를 보게 하는 것 역시 업무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로 판단합니다. 만약 괴롭힘이나 성희롱 피해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연차휴가 사용권리를 침해했다면, 그것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의 불리한 처우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은 직장인들의 일하는 자세나 방법, 일하는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업무지시는 명확하게, 평가와 대우는 공정하게, 관계는 평등하게, 정시 퇴근은 당연하게, 휴가 사용은 자유롭게” 지금, 우리 회사는 어떤가요?
박윤진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공인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