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황금 여인' 되찾는 8년간의 여정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입력 2022-08-28 18:20
수정 2022-08-29 00:17

이보다 더 강렬하고 화려한 그림이 있을까.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과 마주하는 순간, 그 황홀함에 마음과 시선을 빼앗긴다.

2015년 개봉한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영화 ‘우먼 인 골드’는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영화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이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매혹적인 아우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움 이면에 숨겨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하며 감동과 전율도 선사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는 그림 속 주인공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과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이 그림을 되찾기 위해 8년에 걸친 여정을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델레는 성공한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의 부인이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업을 통해 부를 쌓았고, 이를 활용해 많은 예술가를 후원했다. 오스트리아 문화가 꽃피운 것은 이런 유대인 부호들의 힘이 컸다.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집은 클림트, 브람스, 말러 등 빈의 주요 예술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살롱 역할을 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클림트가 페르디난트의 요청을 받아 그렸다. 클림트는 ‘키스’ 등 다양한 황금빛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황금은 불멸의 아름다움, 부와 명예를 상징한다. 그는 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황금빛 그림을 탄생시켰다.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도 결합했다. 섬세한 곡선, 아름다운 꽃과 자연 등이 아르누보 양식에 해당한다. 이 그림은 황금 장식과 아르누보 양식이 결합된 대표작이다. 클림트 작품 중 가장 많은 양의 금이 사용됐다. 아델레의 몸 전체가 아르누보 양식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이 작품을 되찾기 위한 소송 과정과 결과를 고스란히 담았다. 아델레는 페르디난트에게 그림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하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작품은 나치가 몰수해 갔고, 종전 직후엔 오스트리아 정부에 귀속됐다. 그런데 페르디난트는 그림의 소유권을 조카들에게 넘긴다. 그중 한 명인 알트만은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그림 자체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 아니었다. 나치의 위협에 미국으로 망명한 알트만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아껴준 숙모와의 추억을 되찾고 싶어했다. 결국 페르디난트에게 그림의 소유권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지고, 그의 유언에 따라 그림은 알트만에게 반환됐다. 이 작품은 이후 미국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창업자의 아들 로널드 로더가 2006년 1억3500만달러(당시 1297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작품은 로더가 공동 투자한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돼 오늘날까지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법적 소유권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 담긴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과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며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 나아가 모두가 함께 그 사실을 되새기며 그림의 감동을 나누는 것의 의미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 황금빛이 더욱 눈부시고 찬란하게 다가온다.

김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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