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숙련 인력이 풍부하고 반도체부터 전기자동차까지 전 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이끄는 기업이 수두룩합니다. 한국 진출 33년 만에 최대 규모 투자를 하면서 글로벌 특수접착제 사업의 허브로 인천 송도를 낙점한 이유입니다.”
얀 더크 아우리스 헨켈 수석부회장은 지난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첨단 접착솔루션 생산공장을 송도 첨단산업클러스터에 마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헨켈은 23일 송도 플랜트를 완공했다. 1989년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최대 규모인 3500만유로(약 468억원)를 투자했다. 아우리스 수석부회장이 이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1987년 헨켈에 입사해 아시아·태평양 접착테크놀로지스 대표 등을 거친 그는 “세계 시장을 이끄는 한국 주요 기업과의 협업이 헨켈 접착제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접착제는 기저귀 생리대 등 생활용품부터 의료용 패치, 휴대폰,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와 선박까지 다양한 소비재와 내구재에 두루 쓰인다. 안 쓰이는 분야가 거의 없는 까닭에 ‘산업의 감초’로도 불린다. 접착제가 완성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이지만, 은을 함유해 방열 성능을 강화한 서멀 접착제는 ㎏당 가격이 3000만원을 웃돌 만큼 부가가치가 높다.
1876년 생활용품기업으로 출발한 헨켈은 1922년 세탁세제 패키지용 접착제를 개발한 것을 계기로 접착솔루션 사업을 시작, 립스틱 모양 고체형 풀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등 100년이 지난 현재 이 분야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에 쓰이는 접착제까지 전 산업을 아우르는 하이테크 접착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송도 플랜트는 헨켈 접착솔루션 사업의 글로벌 허브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제1 타깃은 수도권 일대에 자리잡은 국내 반도체 및 전자기기 제조업체다. 이들 업체에 주문자 맞춤형으로 생산한 접착솔루션을 신속하게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헨켈은 국내 반도체산업에 쓰이는 접착솔루션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아우리스 수석부회장 “한국은 중국에 이은 아시아 매출 2위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고 밝혔다.
송도 플랜트는 시험 생산을 거쳐 올 하반기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그는 “열을 발산해 전기차 배터리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접착솔루션도 개발 중”이라며 “전자 재료 분야에서 활발한 투자와 내부 혁신, 끊임없는 신제품 연구 및 제조 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연구개발을 수행할 우수한 숙련 인력이 많은 산업 환경이 송도를 글로벌 생산 허브로 선택한 이유”라고 귀띔했다.
송도 플랜트는 연면적 1만144㎡, 지상 2층 규모로 산업별로 다양한 수요에 대응해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에 최적화된 스마트팩토리로 조성됐다. 최첨단 통계적 공정관리(SPC)를 적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전자 정밀 부품 공장에서 요구되는 ‘클래스 10000’ 수준의 클린룸도 갖췄다. 이 시설에서 생산 가능한 접착 솔루션은 500여 개다.
헨켈은 송도 플랜트가 글로벌 공급망의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기차를 비롯해 친환경 가치를 추구하는 미래 산업에서 하이테크 접착솔루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리스 수석부회장은 “송도 플랜트는 100년간의 헨켈 접착제 생산 노하우가 집약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송도=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