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출신 바이올린 거장 기돈 크레머(75)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그가 1997년 창단한 실내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함께 다음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5년 만의 내한 공연이다.
1947년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태어난 크레머는 1965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사사했다. 1969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1970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금메달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크레머는 1975년 공식 데뷔 이후 50여년간 새로운 레퍼토리와 음악을 선보여 왔다. 그는 공연에 앞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늘 여러 양식과 악보, 그리고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크레머가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창단 25주년을 맞은 올해 “다리 역할을 하기를 원한” 작곡가와 작품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다. 그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심오하고 영혼을 감동시킨다”며 “(저와 크레메라타 발티카에게) 기념비적인 해에 슈베르트의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 작곡가에게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자신과 크레메라타 발티카에 맞게 써달라고 위촉했다. 그렇게 해서 라민타 셰르크쉬니테의 ‘겨울밤’, 알렉산더 라스카토프의 ‘슈베르트 ? 전원시’, 빅토르 키시네의 ‘봄꿈’, 게오르기스 오소킨스 의 ‘냇가에서’, 레오니트 데샤트니코프의 ‘거리의 노악사’ 등 다섯 편의 바이올린과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 탄생했다. 크레머는 2일 공연에서 이 다섯 편을 ‘또 하나의 겨울 나그네’라는 이름으로 묶어 들려준다.
다만 이 곡들 사이에 원곡인 ‘겨울 나그네’ 처럼 이야기 흐름이 이어지는 ‘스토리 텔링’은 없다고 했다. “이번에 참여한 작곡가들은 편곡 부분이나 편성, 연주법 등에서 각자 완전히 자유롭게 작업했습니다. 클래식 레퍼토리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려고 하는 동기에서 시작한 작업입니다. 슈베르트 그 자체가 우리에게 이미 ‘현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의 겨울 나그네’에 앞서 1부에서는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형제들)'와 라트비아 작곡가인 야캅스 얀체브스의 '리그넘(나무)', 아르투르스 마스카츠의 '한밤중의 리가'를 연주한다. 그는 “현대 음악의 보석과 같은 작품들”이라며 “프라트레스는 수년간 아껴온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프라트레스는 무한히 반복되는 여섯 마디의 주제를 통해 ‘순간과 영원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다’는 아르보 패르트의 생각을 표현한 곡이다.
2일에 이어 3일 천안 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한다. 이날은 2부에 ‘또 하나의 겨울 나그네’ 대신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메신저’, 쇼스타코비치의 ‘실내교향곡 작품번호 110a’를 연주한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