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첫 문장
지난해 5월 미국 NBC방송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촬영장. 검은 수트를 입은 건장한 남성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코미디쇼를 진행하게 됐다”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뜬금없는 게시물을 올린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전기차를 재창조하고, 인간을 우주선에 태워 화성으로 보낼 사람이 평범할 거라 생각했나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처음으로 본인 마음의 그림자를 공개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입니다. 지적 능력은 정상이지만 사회성에서 문제를 보입니다. 특정 물건이나 행동에 집착하고 관심 분야가 한정돼 있습니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인 우영우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천재 변호사로 묘사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집에선 ‘괴짜’, 학교에선 ‘왕따’머스크는 어려서부터 남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책벌레’였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다 읽고 몽땅 외웠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한번 생각에 잠기면 무아지경에 빠진 듯 누가 불러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스크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는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괴짜 정도로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메이 머스크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
머스크는 10대 시절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실존주의 철학책을 독파했습니다. 2013년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이 덧없어 보였던 시기”라며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가 가장 좋아한 책은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파운데이션》입니다. “우주에 대해서 이해할수록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가는데 가까워집니다” 이때부터 머스크는 우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류의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권종원 《일론 머스크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
가족들은 ‘괴짜’로 이해했지만, 학교에선 ‘왕따’였습니다. 고교 시절 불량 학생들에게 3~4년을 가혹하게 괴롭힘당합니다. 한때는 너무 심하게 맞아서 1주일간 의식을 잃었고, 코 성형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집에서도 그리 편치는 않았습니다.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툭하면 어머니를 손찌검했고 결국 이혼하게 됩니다. 머스크는 괴팍한 아버지와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일종의 심리적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우주 사업? 닷컴 벼락부자 주제에…”머스크는 20대에 창업했던 집투(Zip2)와 엑스닷컴(이후 페이팔과 합병)이 모두 성공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두 회사 지분을 잇달아 매각한 그는 1억6500만달러(약 2200억원)를 거머쥐며 실리콘밸리의 청년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합니다. 이쯤 되면 여생을 ‘모히또’나 마시며 편안하게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페이팔 매각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축의 파티를 벌이던 주말 밤. 한 참석자는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머스크가 이베이에서 산 것 같은 곰팡내 나는 소비에트 로켓 매뉴얼을 읽고 있더군요”(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머스크가 우주 개발 사업을 한다고 나서자 주변에선 모두 뜯어말렸습니다. “우주를 정복하겠다고 나선 갑부들이 수백, 수천만달러를 쏟아붓고 접는 게 이 바닥”이란 게 요지였습니다. 머스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폴로 계획 성공 이후 30년이 지났고, NASA가 당연히 화성으로 가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럴 계획이 전혀 없더군요” 그는 처음엔 러시아를 방문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로켓을 구입하려 합니다. 그러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주 과학자 및 엔지니어들과 꾸준히 접촉하던 머스크는 2002년 봄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호텔에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모였고, 머스크가 지각까지 하는 바람에 회의장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기조연설에서 그는 기어이 ‘폭탄선언’을 합니다. “민간 로켓회사를 세우려고 합니다”
어리둥절하던 장내는 곧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그 중엔 “꼬마야, 돈 아껴서 해변에서 일광욕이나 하렴”이라며 낄낄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에릭 버거 《리프트 오프》). 당시 머스크의 나이 ‘이립(而立)’ 30세였습니다.
“그처럼 집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모두가 비웃었지만, 머스크는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로켓의 재료들을 일일이 따져봤고 그 비용이 전체 발사 비용의 3%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용을 확 줄여 싸고 빠르게 로켓을 만든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본인과 생각을 함께할 젊은 인재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청년들은 반신반의했지만, 곧 머스크의 열정에 감화됐습니다.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문제가 막히면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매일 밤 기술 회의가 열렸고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머스크는 늘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공군에서 복무하다 민간 우주기업에서 일하던 앤 치너리는 지인의 추천으로 스페이스X 면접을 보게 됩니다. ‘10년 짬밥’의 여전사도 머스크와 면접에선 기가 질렸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그렇게 뚫어지게 집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일론은 아주 진지했고, 지독했습니다” 입사 몇 달 뒤 그는 로켓발사장 건설을 위해 태평양 망망대해의 콰절레인 섬까지 가야 했습니다. “뭐든 가능하다고 믿는 스페이스X병에 걸렸는지, 여기서 발사하면 멋지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에릭 버거 《리프트 오프》)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머스크는 왜 이토록 화성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는 2017년 테드 강연(Ted Talk)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놀랍게도 매우 서정적이었습니다. “화성에 가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우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미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동기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구세주가 되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미래를 생각할 때 슬퍼지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는 최근 중국인터넷정보판공실(CAC)이 발간하는 관영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머스크가 장문의 글을 쓴 것은 테슬라를 상장 기업으로 유지하겠다는 2018년 블로그 게시물 이후 4년 만입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미래 사업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담담히 정리했습니다.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왜 우주를 탐험하고 인간을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고 싶은지 묻습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문명은 희미한 작은 촛불과 같고, 공허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과 같습니다. 태양이 팽창하고 지구에서 더는 살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집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성 간 시민이 되고 인류 문명은 계속될 것입니다.(중략)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 세계적 전환을 가속화’하려는 우리의 투쟁에 함께하길 바랍니다’
머스크와 테슬라를 수년간 지지해온 투자자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Ark Invest) CEO는 지난 6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머스크에게 ‘키맨 리스크’(권력 집중의 폐해)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우드는 이렇게 답합니다. “머스크는 도발적인 영혼입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눈부신 재능이죠. 그는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 맨’입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