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시는 용산 정비창 부지 일대를 용적률 1500%가 넘는 초고층 건물의 ‘융복합 국제도시’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런 얘기를 듣노라면 ‘살기 좋은 지방 시대’니 ‘지역균형발전’이니 하는 말은 역대 정권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온 희망 고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면서도 나오는 정책을 보면 수도권은 하루가 다르게 투자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고, 지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심화할지 모른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부상하고 바이오 의료 등의 첨단기술 산업이 떠오르는데, 이런 기업들은 대도시 중에서도 도심의 가장 핵심 지역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상 역대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도 수도권 쏠림 현상이 더욱 심각해진 이유는 정부의 지역 정책이 시장과 기업의 입지 선택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울어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고려하면, 전국에 골고루 나눠주는 식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은 성공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기존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핵심은 ‘사람’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들은 지식 기반 서비스업의 특성이 강하다. 거대한 공장과 설비가 필요 없는 대신, 우수한 인재를 쉽게 뽑고 다양한 분야 간 융합과 협업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고급 인력들도 그들이 만족할 만한 생활 환경과 문화, 교육, 의료 서비스를 누리는 것을 더 중요시 한다. 결국 지방도 수도권에 버금가는 도시화 경제(urbanized economy)의 이익을 제공할 수 있을 때 ‘공간에 대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가 각 지역에 범위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의 ‘초광역경제권(메가시티)’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이오, 디지털 플랫폼 등 공간적 제약이 적은 신성장 산업도 수도권보다 그 외 지역을 입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더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하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종 클러스터를 한곳에 모아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연구개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는 생태계 내 가치사슬의 수직적 통합과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는 거대 거점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
좁은 내수시장으로 인해 지역 경제가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누리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국제적인 개방성을 높여 세계적인 과학기술 플랫폼, 첨단 수출산업 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들의 합병을 유도해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 교류를 활성화하며,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의 지역 투자에 파격적인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지방에 ‘또 다른 서울’을 조성할 때 가능하다. 메가시티 조성은 기간산업의 발전뿐 아니라 지역 내 잠재적인 시장 확대를 통해 교육, 의료 등 내수 중심 비기간산업의 질적인 향상을 유도하고, 지역 내의 소비승수를 높여 지역 경제 발전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기업과 노동자의 공간적 제약을 완화하는 정책도 4차 산업혁명 시대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확인했듯이, 비대면 교육과 원격 의료, 재택근무 등은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모여 있어야 할 필요성을 상당히 완화시켰다. 이들 제도의 적극적인 도입과 지원은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넓고 덜 복잡한 곳으로 이주하도록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자원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지방에 또 다른 초광역경제권을 형성하는 것도, 비대면 서비스와 유연한 근로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모두 다양한 경제 주체가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갖고 협의를 통해 정책 상호 간의 정합성을 높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의 보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대하며, 윤석열 정부의 ‘살기 좋은 지방 시대’ 국정 목표가 또 다른 희망 고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