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주택건설협회(주건협)가 주택 분양보증시장 진출을 추진하면서 해묵은 보증시장 개방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주건협은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보증 시장을 독점하면서 분양가 상승을 억누르고 건설사의 보증료 부담은 커지고 있다며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분양보증은 국민의 주거 안정과 재산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만큼 개방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건협 “독점으로 건설사 부담 가중”
24일 업계에 따르면 주건협은 분양보증 시장 진출을 위해 주택사업공제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박재홍 협회장은 2019년 말 취임하면서 주택사업공제조합 설립을 공약 사항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주건협은 주택사업공제조합의 분양보증 시장 진출이 가능하도록 의원 입법 형태의 발의까지 준비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HUG가 분양보증 사업을 독점해 중소·중견 건설사들의 보증료 부담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분양보증은 건설사가 유동성 위기로 파산해 분양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HUG가 해당 주택의 분양을 직접 이행하거나 분양대금을 돌려주기로 약속하는 제도다. 건설사 등 주택 사업자는 30가구 이상 주택을 분양할 때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 금융사 대출이 가능하다. 보증료율은 대지비·건축비의 0.138~0.469%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HUG는 1993년부터 보증 업무를 단독으로 해오고 있다.
건설업계는 주택 경기가 좋을 때마다 분양보증 시장 개방 문제를 제기해왔다. HUG 이외에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허용해 건설사 신용도에 따라 차별화된 보증료율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주건협은 “분양보증 시장이 민간에 개방되면 건설사가 부담하는 수수료가 현재보다 최대 40%가량 절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간보증 파산 때 피해는 소비자 몫”전문가들 사이에선 보증시장 개방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택 경기에 민감한 분양보증의 경우 불황기엔 대규모 대위변제(대신 갚아줌) 위험성이 커 공적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1993년 이미 주택사업공제조합이 설립된 적이 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건설사의 잇따른 부도로 보증 업무를 수행하던 주택사업공제조합이 사고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자 결국 정부가 출자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택사업공제조합이 HUG(옛 대한주택보증)로 전환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의 재산권 보호와 직결되는 문제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섣불리 분양보증 시장 문을 열었다가 또 다른 부작용으로 시장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사 보증료 인하가 분양가 인하, 주택 공급 확대로 이어지기 어려운 점도 반대 이유로 꼽았다.
현재 보증 시장의 독특한 구조도 민간에 개방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HUG는 수익성이 낮고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민간 보증기관이 기피하는 전세금반환보증과 임대보증금보증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전세보증 시장은 90%를, 임대보증 시장은 99%를 HUG가 맡고 있다. 분양보증에서 발생한 수익을 전·월세 반환금 사고에 투입하는 식이다. 2017년 34억원이던 HUG의 전세 대위변제액은 지난해 504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부가 분양보증 시장 개방에 소극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시장 개방으로 HUG의 분양보증 수익이 줄면 교차 보전이 어려워져 전세·임대보증료율이 인상돼 서민들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보증기관의 유동성 위기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도시건축공학과 교수는 “민간 보증기관이 파산할 경우 정부 보조나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어 주택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는 시기에 시장 개방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정/박종필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