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1%까지 치솟았던 미국 물가상승률이 7월 8.5%로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4.7%에 달하기 이전까지 대개 2% 내외 등락을 유지했음을 고려하면, 최근 추세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 격랑에 휩싸여 10% 넘는 연간 물가상승률을 경험한 이후 약 40년 만에 최고치다.
높은 물가상승하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고충을 반영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인플레 감축법’이란 이름으로 물가상승률 제어를 목표로 밝힌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책 내용을 보면 인플레이션 제어에 도움이 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요소가 혼재돼 해당 법안이 전체적으로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정책효과의 계량 분석으로 유명한 ‘펜-와튼 예산모형(PWBM)’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해당 법안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미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고 이런 통화정책을 지속하면 물가 제어 효과는 명확해서, 만약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약화한다면 이는 ‘인플레 감축법’ 때문보다는 긴축적 통화정책의 역할일 것이다.
더구나 명칭은 ‘인플레 감축법’이지만 내용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중산층 복원 명분으로 추진하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계획에 있던 복지부문과 상당히 비슷한 수정 버전이다. 구체적으로는 전기·대체에너지 차량 구매에 따른 세액공제와 저소득층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보조금, 그리고 백신 제공과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비 지원과 약제비 상한 설정 등 ‘물가상승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복지 및 관련 지원 법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원을 위해 설계된 구체적인 내용이 미국 중심의 ‘자국생산(自國生産)’ 패러다임하에 있다는 것이다.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인 전기차 구매에 대한 세액공제(최대 7500달러, 중고차 최대 4000달러)의 경우 기본적으로 미국에서의 조립·생산이 조건이다. 더 나아가 배터리와 광물의 일정 비율 이상을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며, 중국 등 제한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광물을 사용한 자동차는 아예 배제 대상이 된다. 기본적으로는 미국 국내 생산을 기본으로, 만약 해외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한다면 미국과 우호적인 글로벌 가치사슬 네트워크에 들어 있는 국가와만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대니 로드릭 허버드대 교수가 현재의 국제적인 움직임을 ‘생산주의(productivism)’ 개념으로 지적한 측면과 연관될 수 있다. 현재는 금융과 소비자주의, 글로벌주의 대신 생산과 근로, 지역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생산주의’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진행 중이며 그 과정에서 미국 산업 중심의 생산 네트워크 확충과 중국에 대한 비판과 견제, 그리고 미국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등 정부의 첨단기술 지원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초당파적인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플레 감축 명분으로 제시된 정책에도 그 바탕에는 미국 중심의 ‘자국 생산 우선주의’가 있다는 뜻이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n First)’를 외치던 트럼프의 공화당 행정부로부터 정권 교체는 있었지만, 미국 중심주의는 기본적으로 같다.
지금처럼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해 대응하던 1980년대 초반 비교적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공화당 정권이었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즉,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플라자 합의와 각종 통상 제재, 그리고 심지어는 반도체 시장 점유율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등을 통해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당시 부상하던 일본을 견제하는 부분에서는 역시 초당파적이었다.
결국 인플레 감축법으로 인해 미국의 물가상승이 가라앉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첨단분야에서 차별화된 우리 자신의 기술 역량을 확보하고 미국 중심의 국제 공급 네트워크 내에서 강력한 연대와 협력체제를 미국과 구축하는 것은 선택의 이슈가 아니라 향후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인플레 감축법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