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김유원 "젊은 에너지 가득한 연주 선사할 것"

입력 2022-08-23 16:23
수정 2022-08-23 16:43


지난해 8월 처음 열린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폐막 공연의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를 객석에서 지켜본 지휘자 김유원(34)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축제 공연을 위해 독일, 미국 등에서 활약하는 젋은 한국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매료돼서다. 공모를 통해 뽑혀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이승원이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도 저 무대에 서서 지휘하고 싶다‘는 바람은 1년 뒤 현실이 됐다. 김유원은 24~28일 열리는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2022' 무대의 포디엄에 선다. 2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개·폐막 공연을 맡은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선발된 것이다. 지난 22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에는 연주 일정이 겹쳐 지휘자 공모에 지원하지 못했다”며 “올해는 공고가 뜨자마자 필요한 서류와 연주 영상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축제는 예술의전당과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가 클래식 음악계 발전을 위해 실력 있는 신예 연주자들에게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고자 기획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IBK챔버홀, 리사이틀홀, 인춘아트홀에서 닷새간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독주회 등 총 16회의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주단체와 연주자들이 모두 공모로 선정됐다. 김유원은 “경쟁률이 높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뽑히게 돼 정말 기뻤다”며 “지난해 성공적인 연주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도 된다”고 했다.

올해 새롭게 구성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는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필하모닉 악장인 신정은이 악장, 독일 밤베르크 필하모닉 악장 지상희와 프랑스 마르세유 오페라 오케스트라 악장 김다민이 부악장으로 참여한다. 미국 미네소타 세인트폴 챔버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부수석 심효비와 클라리넷 수석 김상윤와 독일 호퍼 심포니 첼로 수석 현영필, 베를린 필하모닉 산하 카라얀 아카데미 출신인 플루티스트 김세현과 오보이스트 한이제, 독일 마인츠 필하모닉 호른 부수석 호르니스트 김재형 등도 합류했다.

김유원은 이들과 함께 24일 개막 공연에서 차이콥스키의 '폴로네이즈'와 교향곡 5번, 힌데미트의 비올라 협주곡 '백조고기를 굽는 사나이'(신경식 협연)를 들려준다. 28일 폐막 공연에선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김동현 협연)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을 연주한다. 협연곡을 제외하고는 김유원이 직접 고른 작품들이다. “제가 사랑하는 곡들을 연주할 수 있어 더 기쁩니다. 작년 연주를 들은 게 선곡에 도움이 됐어요.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질주하는 차이콥스키 5번은 오케스트라의 젊은 에너지와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색채감이 뚜렷한 슈트라우스와 라벨 곡은 고난도의 독주 파트가 많은데 연주자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싶어 골랐습니다.”

김유원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 미국 커티스음악원에서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2014년 미국 아스펜 음악제에 장학생으로 참가해 우수 지휘자에게 주어지는 ’로버트 스파노‘ 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 연주자들로 구성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번처럼 프로 연주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악단 지휘는 처음입니다. 독일과 미국 등 소속 악단이 다르다보니 각자 익숙한 템포와 타이밍이 달라서 첫 리허설 때 개개인의 소리를 한데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반면 개인의 기량이 뛰어나 각 파트 연습은 쉽게 이뤄졌습니다. 젊은 에너지로 가득한 좋은 앙상블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김유원은 2016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의 지휘 워크숍에서 거장 베르나르트 하이팅크(1929~2021)에게 받은 지도와 격려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하이팅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제 보물“이라고 했다. “제 과제였던 브람스 교향곡 1번 2악장 지휘를 마쳤을 때 하이팅크 선생님이 ‘네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다.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지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죠. 음악을 사랑해서 지휘 공부를 시작했지만 좌절도 많았고, 워크숍에 참가했을 때도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거든요. 하이팅크의 그 말이 큰 위안이 됐고, 제가 지휘의 길을 계속 가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김유원은 2018년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열린 프린세스 아스트리드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우승에 따른 부상으로 내년 2월 노르웨이에서 지휘자 장한나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한다. “코로나19로 계속 미뤄지다가 최근 연주 일정이 확정됐어요. 지난해 봄에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지휘합니다. 그때는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으로 객석에 관객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북유럽 클래식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