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 전환기에 기업 사업재편을 활성화하려면 대기업도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을 통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다. 일본이 산업경쟁력강화법(산경법) 특례를 통해 자국 기업의 인수합병(M&A) 시 공정거래법 적용 등을 완화하고 있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국경제신문사와 한일산업금융법포럼이 22일 서울 우이동 파라스파라호텔에서 공동 개최한 ‘2022 사업재편 국제 콘퍼런스 특별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이같이 입을 모았다. 이번 좌담회는 양국의 사업재편 지원 제도인 일본의 산경법과 한국의 기활법 운용 현황을 점검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사회로 열린 이번 좌담회에 한국 측은 권용수 건국대 교양대 교수, 안완기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이원해 대모엔지니어링 대표가 참석했고 일본 측은 니시무라 아사히 법률사무소 소속의 하라다 미쓰히로, 고바야시 사키카, 오가 도모키, 윤원 변호사가 화상으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기활법의 현재 과제와 개선 방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권용수 교수=한국은 2016년 기업의 선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활법을 제정했습니다. 일본이 앞서 도입한 산경법을 참고했죠.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작년에만 100곳 넘는 기업이 사업재편 승인 기업으로 선정됐습니다. 다만 과잉공급 업종, 산업위기 지역, 신사업 진출 등 세 가지 분야로만 지원 범위를 제한한 것은 한계입니다. 신사업 진출이 목적인 기업들은 제도상 회사법·공정거래법 특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원해 대표=중소기업이 사업재편에 나설 때 가장 큰 장벽은 인력 문제입니다. 연구원 인력을 중소기업에 파견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업재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회=기활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권 교수=현재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발맞춰 선제적으로 사업재편에 임하는 기업도 신사업 진출이라는 목적이 없으면 기활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됩니다. 사업재편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별도의 계획 승인 제도를 마련해 탄소중립이나 디지털 전환을 폭넓게 지원해야 합니다. 이참에 적용 범위에 관한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안완기 회장=조세특례법은 260개 신기술 분야를 기반으로 신사업 여부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법이 시대 흐름을 바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기술 검토 요건을 설정한 뒤 신산업판정위원회의 재량권을 확대해야 합니다.
▷하라다 변호사=일본에서도 산경법의 특례 조치를 받기 위해선 다양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다만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이 충족되면 기업 규모나 형태에 따라 차별을 두는 규정은 없습니다.
▷사회=사업재편 수요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데요.
▷하라다 변호사=산경법이 도입된 시기는 일본 기업들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했던 시기입니다. 위기에 빠진 기업들에 대규모 금융 지원을 하기 위한 의도가 강했죠. 그러나 최근에는 새로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정책적 측면이 더 강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이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안 회장=국제질서 변화, 정보통신 기술 발전 등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자발적 사업재편의 필요성이 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적용 사례를 보면 이미 긍정적 효과가 입증됐죠.
▷사회=기활법의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편은 무엇인가요.
▷권 교수=상법이나 공정거래법 특례 등은 정부 부처 간 의견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특례 적용을 배제하는 규정이 유지되고 있고, 기활법 활용에 제약이 되고 있습니다. 관계부처, 이해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연구회를 설치해 의견 조정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안 회장=일본의 경우 대기업 간 결합심사 시 국내 시장의 독과점 관점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 관점에서 기업 결합을 바라보고 접근합니다. 한국도 사업재편 기업에 대한 특례를 더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사회=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구분을 없앨 방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권 교수=원래 ‘원샷법’이라고 이름 붙여졌던 기활법은 사업 전환 필요가 있는 기업에 모든 도움을 한 번에 제공한다는 입법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 승계 등에 이용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죠. 이에 법이 위축된 측면이 큽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신사업에 뛰어들면 중소·중견기업이 뒤따라오면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대기업이 사업재편 제도를 더 이용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안 회장=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사업재편은 이 법이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그래야 산업 밸류체인 전체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공동사업 재편의 경우 신청 자격을 완화해주는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합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