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올 상반기 판매량에서 글로벌 완성차업계 3위에 올랐다. 반도체 공급난 등으로 경쟁 기업들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차량 경쟁력을 앞세워 판매량 감소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329만9000대를 판매해 513만8000대의 도요타, 400만6000대의 폭스바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 뒤로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314만 대), 스텔란티스(301만9000대), 제너럴모터스(GM·284만9000대)가 4~6위를 형성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모든 업체가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빚은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판매량을 잘 방어했다. 2위 폭스바겐은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14% 감소했고 르노-닛산은 17.3% 줄었다. 스텔란티스와 GM도 각각 16%, 18.6% 급감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판매량 감소폭은 5.1%에 그쳐 6% 줄어든 도요타보다 작았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보다 공급망 관리를 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반도체를 항공기와 인편으로 실어 나르는 등 차량 생산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가동이 중단된 러시아 공장으로 갈 반도체를 다른 지역으로 돌리는 등 빠른 대처도 주효했다.
여기에 제네시스와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인기 차종의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수요를 흡수했다. 특히 중국을 제외하면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선전이 돋보였다. 올 상반기 미국에서 2만5668대가 팔린 제네시스는 반기 기준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우며 고급 브랜드 시장에 안착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은 테슬라에 이어 2위를 달렸다.
현대차그룹이 연간 기준으로도 글로벌 완성차 3위 자리를 지켜낼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은 4위를 차지했던 2020년 외에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줄곧 글로벌 5위에 자리했다. 연간 기준 ‘빅3’를 차지한 적은 아직 없다. 현대차그룹은 하반기 아이오닉 6를 출시하고 미국 공장에서 GV70 전기차를 생산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선전은 앞으로도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약 9%로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유럽 친환경차 시장에서도 점유율 11.5%로 3위를 기록했다. 폭스바겐과 스텔란티스의 뒤를 이었다. 특히 자국산 차가 주를 이루는 독일 전기차 시장에서도 1~7월 기준 3위를 기록했다. 코나EV와 아이오닉5가 주도했다. 영국 전기차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은 폭스바겐과 테슬라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다만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 대응은 변수다. IRA는 미국 내에서 만든 전기차에만 약 1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로, 미국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현대차그룹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경쟁 기업인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내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현대차그룹을 위협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GV70 전기차를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는 등 대응에 나설 예정이지만 주력 차종 아이오닉 5와 EV6는 아직 기약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인플레감축법은 질주하던 현대차그룹에 상당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며 “노조를 설득해 현지 전기차 생산 비중을 늘리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