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SPC 활용한 해외 M&A 올스톱 되나

입력 2022-08-21 17:35
수정 2022-08-22 01:10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통한 해외 투자로 얻은 소득에 대한 세금 급증을 막을 법안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면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에 미칠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해외 M&A에 나설 땐 SPC를 세우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막바지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2조원 규모의 에스디바이오센서와 사모펀드(PEF) 운용사 SJL파트너스의 미국 체외진단기업 머리디언 경영권 인수가 좋은 예다. 이 거래에는 두 개의 SPC가 활용됐다. 에스디바이오센서와 SJL파트너스는 현지에서 자금을 투입할 ‘모회사 SPC’를 세웠고, 그 SPC 아래 머리디언을 합병하기 위한 ‘자회사 SPC’를 설립했다.

이 자회사 SPC는 머리디언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 합병이 완료되면 모회사 SPC는 합병된 머리디언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된다. 머리디언 기존 주주들은 현금으로 합병 대가를 받고 빠지게 된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9조원), KCC의 모멘티브 인수(3조원), CJ제일제당의 슈완스컴퍼니 인수(2조원) 등 국내 기업이 미국을 대상으로 한 대형 M&A에서도 모두 이렇게 복수의 SPC가 활용됐다.

국내 기업과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해외 M&A를 진행하면서 현지에 SPC를 세워온 이유엔 세제상 목적과 거래구조상 목적이 있다. 델라웨어 등 미국 내에서도 세율이 낮고 설립 절차가 간편한 주에 SPC를 세워 거래를 진행해 절세를 꾀할 수 있다. 또 거래 규모가 큰 M&A에선 본사가 직접 외부 차입에 나설 경우 부채비율 상승 등 재무 부담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 하지만 SPC를 세워 인수 대상 회사의 지분을 담보로 일부 대금을 차입해 M&A에 투입하면 이런 부담을 일차적으로 덜 수 있어 사실상 SPC가 필수적으로 활용됐다.

해외 거래들이 역삼각합병 구조로 이뤄지는 점도 SPC 설립이 필수였던 이유다. 역삼각합병은 인수기업이 SPC를 세운 뒤 피인수기업이 해당 SPC를 흡수합병하도록 하는 M&A 방식이다. 거래 이후에도 피인수 기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지식재산권·브랜드 가치·고객사 거래 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회사를 소멸할 경우 각종 인허가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거래가 역삼각합병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BEPS(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 방지협약에 따라 해외 SPC 설립을 통한 투자에 세금이 급증하면 국내 기업들은 기업가치 산정부터 다시 해야 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인수한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인수를 위해 설립한 SPC를 통해 한국으로 배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세금이 증가하면 투자로 인한 현금흐름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해외 M&A 협상을 사실상 모두 중단해야 될 상황”이라며 “대기업의 해외 M&A가 갈수록 늘어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