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롯데문화재단이 기획한 여름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2’ 아홉 번째 공연의 1부(KBS교향악단 연주)가 끝났을 때였다. 한 진행요원이 피아노 의자를 하나 더 들고나오자 눈치 빠른 관객들이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다.
이날 공연에서 지휘자로 포디엄에 올라 KBS교향악단을 이끈 ‘천재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독주자로 막 협연을 마친 또 다른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함께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기대에서였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됐다. 무대에 다시 등장한 두 사람은 그랜드 피아노 앞에 놓인 두 개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김선욱과 임윤찬의 첫 만남앙코르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 521’의 2악장 안단테. 김선욱이 저음부, 임윤찬이 고음부를 맡은 네 손에서 모차르트의 따스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2000여 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두 연주자만 바라봤다. 멜로디 파트를 담당한 후배(임윤찬)의 자유로운 템포와 강약 변화를 선배(김선욱)가 부드러운 반주로 넉넉하게 받아줬다. 두 스타의 ‘수담(手談)’이 끝나자 공연장은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지난 12일 개막한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의 ‘클라이맥스’였다. 이번 공연은 지난 6월 밴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클래식의 아이돌’이 된 임윤찬과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실제 두 사람은 이번 공연 리허설 때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들이 함께한 협연곡은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1번 g단조였다. 단조지만 우울하다기보다 활기찬 작품이다. 김선욱이 지난해 1월 신년음악회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가벼운 멘델스존의 작품 이미지에 딱 맞는 곡”이라며 “짧지만 활력 넘치고 톡톡 튀는 매력이 가득하다”고 했다. 가벼운 멘델스존에 깊이 더한 임윤찬임윤찬의 해석은 달랐다. 멘델스존의 재기발랄함에 진중한 깊이를 더했다. 1악장의 격하고 빠른 1주제에 이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2주제에서 임윤찬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이내믹(셈여림)을 섬세하게 조절하고, 연주자에게 허용된 루바토(연주자가 선율의 느낌을 주기 위해 임의로 빠르기를 바꾸는 것)를 최대한 살리면서 선율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느린 2악장에서 이런 연주자의 개성이 좀 더 부각됐다. 비올라와 첼로로부터 이어받은 주제 선율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3악장 프레스토(매우 빠르게)의 휘몰아치는 악장에서는 왼손의 강력한 타건을 앞세워 열정과 패기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오케스트라와의 합도 잘 맞았다. 이 곡을 잘 아는 김선욱은 지휘하는 내내 임윤찬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KBS교향악단은 지휘자의 정교한 지시에 맞춰 독주자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임윤찬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으면서 음량과 템포를 조절했다. 창의적인 해석과 원활한 소통으로 객석의 감동을 끌어낸 명연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호령할 때와 달리 어색했던 임윤찬의 무대 매너도 눈에 띄게 성숙해졌다. 무대에 나올 때나 객석에 인사할 때 쑥스러워하던 모습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두 번째 앙코르곡인 멘델스존의 ‘판타지 f#단조’를 연주한 뒤에는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띤 채 왼손을 가슴 위에 얹고 객석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지휘 2년 차’인 김선욱은 지난해 7월 이후 1년여 만에 재회한 KBS교향악단과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1부 첫 곡인 코른골트의 ‘연극’ 서곡에서는 복잡한 화성과 급변하는 조성이 얽히는 작곡가 특유의 까다로운 음색을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2부 메인 곡인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악보 없이 암보로 지휘했다. 곡에 통달한 듯했다. 작곡가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다채로운 색깔을 생생하게 펼쳐냈다. 연주 내내 음표 하나 놓치지 않고 역동적인 제스처로 자신감 있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지휘자 김선욱’의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