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차 시간표 때문에 '1차 세계대전' 발발했다?

입력 2022-08-19 17:44
수정 2022-08-20 00:33
“1차 세계대전은 기차 시간표 때문에 벌어졌다.”

<기차 시간표 전쟁>은 역사가 A.J.P. 테일러(1906~1990)의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그는 주류 역사학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독창적인 저술로 주목받았다.

160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1차 세계대전. “세계 문명사를 뒤흔든 전쟁의 원인은 유럽 정치가들이 기차 시간표의 힘을 거스르지 못한 탓”이라는 테일러의 분석은 다소 황당하게 들린다. 테일러는 그의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쟁 발발 당시 황제, 정치가, 군부 지도자들의 의사 결정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은 지정학적 요인의 충돌보다 산업혁명의 산물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1차 세계대전은 기차 시간표에 따라 막이 올랐고, 기차 시간표에 따라 진행됐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병력과 군수물자를 기차를 이용해 전장으로 옮겼다. 동원을 위한 시간표가 기차 일정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테일러는 독일의 참모총장이었던 슐리펜이 세운 계획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1914년 8월 1일 독일이 프랑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당시, 프랑스가 중립을 선언하겠다는 의사를 비치자 독일의 마지막 군주 빌헬름 2세는 전쟁 준비를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당시 참모총장인 몰트케는 반대했다. 전임인 슐리펜이 세운 계획에 따라 준비를 진행해 왔고, 갑자기 전쟁을 취소하면 1만1000편의 열차를 재편성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차의 기동력 때문에 전쟁은 결국 전후방 구분 없는 총력전으로 치달으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다만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역사학계에서 ‘백년 논쟁’이 이뤄질 정도로 복잡한 주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역사학자의 주장을 진리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