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NDC '대못'에…해외서 공짜로 탄소 줄여주게된 尹정부

입력 2022-08-19 17:04
수정 2022-08-19 17:09


정부가 해외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의무 감축하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국내 감축만으론 목표치를 달성하기 힘든 상황이라서다.

정부는 내년부터 정부 예산을 들여 해외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립하거나 폐기물 처리장을 만들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기업을 지원한다. 재무건전성 강화에 나선다며 고강도 개혁을 예고한 공공기관을 해외 감축 사업에 동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40% 감축은 비현실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시킨 전 정부의 실책이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부터 국제감축 본격추진
정부는 1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추진전략'을 의결했다. 국제감축은 국내기업이 해외에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추진하고,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감축 실적을 국내로 이전 받는 매커니즘이다. 국가 간 양자협정을 통해 감축실적 거래 조건을 합의하는 것으로, 작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제도화됐지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극초기 단계에 있는 감축 방식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COP26에서 그전까지 2018년 대비 26.3%였던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40% 감축으로 대폭 상향한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매년 4.17%씩 감축해야 하는 시나리오로, 2030년에는 2018년 대비 40%인 2억9100만t을 감축해야 한다. 문 정부는 이 중 11.5%인 3350만t을 국제감축으로 줄이겠다고 명시했다.

당시 "퇴임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정부가 '대못'을 박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NDC 상향 발표 이전 관련 실무를 맡은 대통령 소속 탄소중립위원회 내부에선 상향안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결국 상향안이 COP26에서 발표됐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NDC를 다시 현실적인 수준으로 재조정하는 안을 검토했으나,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한 약속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에 전체 감축량을 조정하는 것은 포기했다.

이에 정부는 출범 후 3개월 간의 준비 끝에 국제감축사업 본격 추진을 위한 세부 추진 전략을 마련해 이날 공개했다. 먼저 기획재정부 등 9개 유관부처와 전담기구,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통합지원 플랫폼을 만들어 매달 세부 정책과제를 추진·점검하기로 했다. 9월 중 관련 국내 규범 정비를 마무리하고, 2030년까지의 국제감축 경로 및 중장기 사업소요를 토대로 연차별 정부 지원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아직 불확실성이 큰 사업인만큼 정부 주도로 추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정부가 현재 국제감축 양자협정을 맺은 국가는 베트남 1곳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인도, 칠레, 태국, 몽골,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아랍에미리트 등 17개국과 양자협정 체결을 추진 중이다. 대부분 국토가 넓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용이하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 현지 투자를 검토 중인 개발도상국들이다.

기존에 개도국에서 추진 중인 공적개발원조(ODA)사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아시아개발은행(ADB)등 국제금융기구에서 추진 중인 지원 사업에 자금을 출자해 사업을 확대하는 안도 검토한다. 국제감축 사업에 나서는 기업에 대해선 기업 규모별로 최대 100bp(1%)의 우대금리 혜택을 부여하는 등 공적금융 지원도 강화한다.

대규모 장기 투자사업의 경우 공공기관 참여를 유도하고, 이 경우 예비타당성조사 기준도 완화한다. 공공기관이 국제감축사업에 투자할 땐 현재 연 3회로 정해져 있는 신청 기한이 아닌 수시 신청이 가능하도록 바꾸고, 심사 기간도 4개월 이내에서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사업 추진으로 취득하는 온실가스 감축 크레딧을 예타 내 공공성·수익성 평가에 반영해 통과 가능성도 높여주기로 했다.
○탄소감축 위해선 공공기관 예타도 완화
정부가 국제감축 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산업계 뿐 아니라 정부 안팎에서도 사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날 정부는 국제감축에 대해 "NDC 제출 당사국 194개 중 122개국 이상이 국제감축 활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향후 유망한 신산업 분야"라 설명했지만 한국처럼 감축량을 확정하고 실제 사업 추진에 나선 국가는 일본과 스위스 정도로 극소수다.

일부 전문가가 연간 4조원 규모의 ODA 사업을 국제감축에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정부에 따르면 ODA 재원은 개발원조 원칙상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NDC에 제시된 3350만t은 민간이 확보하는 국제감축 실적 외에 순전히 정부가 확보해야 하는 양이다. 정부가 ODA와 별도로 예산을 편성해 민관 공동 사업에 투자하거나, 민간이 확보한 감축 실적을 구매해줘야 하는 구조다. 정부는 이날 이 과정에 얼마의 예산이 투입될 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국제감축이 해외로의 투자 유출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예시로 제시한 국제감축 사업은 폐기물 자원화, 태양광 보급, 산림흡수원 증진 등이다. ODA와의 연계 가능성으론 몽골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막화 개선 사업과 연계해 사업지 인근에 있는 매립장 매립가스를 포집·소각하는 사업을 제시했다.

경영계 관계자는 "이미 NDC가 상향된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선 탄소감축 비용이 높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줄이는 게 낫다"면서도 "한국에 투자해서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돈 들여서 다른 나라 탄소배출을 줄여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산 공장이 있는 현지 개도국들은 자체적으로 탄소 감축할 자본이나 기술이 부족한데 한국이 공짜로 탄소를 줄여주니 반길 수 밖에 없다"며 "NDC를 무리해서 상향하지 않았다면 굳이 무리해서 국제감축에 나설 필요가 없었는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을 국제감축 사업에 동원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경영평가에서 재무성과 비중을 확대하고 정원 감축 및 경비 절감을 강제하는 등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정작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국제감축사업에 대해선 예타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경로나 수단 같은 부분은 앞으로 조정이 일부 가능하다"며 "국제감축이 해외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도 있겠지만 공급망 전체가 글로벌 소싱을 하는 추세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추진을 하느냐에 따라 성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