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차웅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난 17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여름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2’(12~21일) 무대에 올랐다.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은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인 멘델스존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음악세계를 조망하는 기획이다. 축제가 이제 반환점을 도는 날,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오로지 코른골트 음악만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1부 연주곡은 코른골트가 미국으로 건너가 작곡한 영화음악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20세기 폭스 팡파레’를 연주하며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을 알렸고, 이후 코른골트의 대표작인 ‘로빈 후드의 모험’과 ‘바다 매’, ‘킹스 로우’ 모음곡을 차례로 연주했다. 이들 작품은 한국에서 모두 초연됐다.
음악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작곡한 곡들이지만 코른골트의 천재적인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사용하는 관현악의 화려한 어법이 영화음악의 근간이 됐음을 들려줬다.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연주를 즐기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지휘자는 영화음악의 주요 멜로디가 귀에 편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관객들의 귀를 단번에 잡아끄는 요소도 많았다. ‘킹스 로우’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음악은 영화 ‘스타워즈’의 주제곡을 떠올리게 했고, 곳곳에 흐르는 사랑의 테마는 로맨스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달콤했다. 지나치게 통속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코른골트의 클래식 음악 작품에선 느낄 수 없는 영화음악만의 매력이 있었다.
2부에선 코른골트의 신포니에타 B장조가 연주됐다. 15세의 코른골트가 작곡한 초기 작품이자 많은 악기를 동원해 만든 첫 번째 대규모 작품이기도 하다. 지휘자의 섬세한 연출로 코른골트 음악이 가진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대담하게 사용된 화성들의 울림을 극대화하고, 극적인 조성과 곡조의 전환도 잘 표현했다. 후기 낭만주의의 끝에서 만들어진 코른골트의 언어를 충실하게 무대로 옮겼다.
특히 3악장에서 보여준 현악 파트의 밀도 높은 앙상블은 왜 이 작품이 당대 거장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보여줬다. “그의 앞길에 축복만이 있을 것”이라고 했던 구스타프 말러(1860~1911)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이야기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18세기의 천재 모차르트, 19세기의 천재 멘델스존처럼 코른골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라는 걸 무대에서 증명했다.
편안하게 울려 퍼지는 멜로디와는 달리 지휘자는 작곡가의 음악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객석에 전달될 수 있도록 분투했다. 다양한 성격을 띤 선율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지휘자는 이를 명료하게 재단하면서도 풍부함을 잃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건 작곡가의 몫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여주는 건 무대 위 지휘자의 몫이다.
앙코르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이 선택한 음악은 코른골트의 극음악 ‘헛소동’ 중 간주곡이었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었지만, 현악 파트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20세기에 숨겨져 있던 코른골트라는 보물을 꺼내 보여줬다. 지휘자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해 보였다. “웰컴 투 코른골트(Welcome to Korngold).”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