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서 청년들에게 술 마시기를 권장하는 사회가 있을까. 이런 황당한 일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저출산에 따른 고령화가 가장 심한 이 나라는 청년층 감소로 주류 판매가 급감, 세수에 비상이 걸리자 급기야 음주 독려 캠페인까지 전개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 국세청은 20~39세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사케 비바(Sake Viva!)’라는 술 판촉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젊은 층의 술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주류 신제품과 브랜드, 디자인,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등을 접수하는 것이다.
아사히맥주가 일본의 20~60세 80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절반 정도가 술을 못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핵심 술 소비층인 20대 남성의 술꾼 대열 이탈 현상이 두드러진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주 3회 이상, 한 번에 1홉(180mL) 이상의 술을 마시는 애주가 분포 조사를 한 결과 1999년 34%였던 20대 남성 비율이 2019년 13%로 급감했다.
청년층이 감소하는 인구구조와 함께 술을 멀리하는 새로운 가치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술 취하지 않은’을 뜻하는 영어 ‘서버(sober)’와 ‘호기심 많은’의 ‘큐리어스(curious)’를 합친 ‘서버 큐리어스족’이 새로운 롤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인구구조와 가치관 변화에 더해 코로나로 인한 술 모임 축소까지 겹쳐 1995년 100L였던 일본의 1인당 평균 알코올 소비량은 2020년 75L로 급감했다. 일본 전체 세수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3%에서 2020 회계연도에는 1.7%로 뚝 떨어졌다. 일본 정부가 1989년 주세법을 개정한 이후 31년 만에 가장 적은 세수 규모다. 지난 6월 역대 최고 수준의 국가 부채를 기록한 일본 정부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세수 손실이다.
일본 맥주회사들은 17년째 매출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술 못 마시는 사람을 가리키는 ‘게코족’들을 겨냥해 알코올 도수 1% 미만의 ‘미(微)알코올 맥주’ 개발 및 판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장기 불황과 고령층 증가로 활력을 잃은 일본 사회에서는 과거보다 술맛 날 일도 별로 없을 듯하다. 합계출산율 1.1명으로 세계 최하위인 우리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