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무원 3명 중 한 명은 비상근이다. 자위대원과 재판관을 제외한 일반직 공무원 숫자는 42만 명(지난해 7월 기준)으로 한국(113만 명·정원 기준)의 40%가 채 안 된다. 그중 15만 명이 이른바 계약직이다. 최근 10년간 늘어난 1만8000명 중 90%를 이렇게 채웠다.
공공서비스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증원을 요구하는 여론은 없다. 아니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부서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 크다. 국부를 창출하는 민간에 부족한 인적자원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 사회의 그늘을 먼저 보여주는 ‘반면교사’ 일본의 모습이다.
한국의 관료사회는 어떤가. 지난 8일 전국 공무원 노동조합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은 역설적으로 공공부문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9급 공무원이라고 밝힌 청년노조위원장은 “공무원이 되면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승진하고, 퇴직하면 연금도 받을 생각에 든든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9급 6년 차인 본인의 월급 실수령액은 200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했다. 요지는 1%로 책정된 내년 인상률을 7.4%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를 일회성으로 받아들이더라도 과연 비대해진 관료조직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올해 공무원 인건비 예산이 처음으로 40조원을 넘었다. 내년 상승률을 1%대로 억제하더라도 호봉 승급분을 더하면 3%에 육박한다. 이대로라면 수년 내 정부 예산의 20%를 공무원 월급으로 지급해야 할 판이다.
재정이 떠안는 연금 부담도 비례해서 커진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공무원연금 적자는 총 61조원, 군인연금 적자는 총 33조원에 달한다. 줄잡아 100조원에 달하는 이들 ‘특수직 연금’의 적자를 납세자인 국민이 계속 떠맡으려 할까. 최근 2년간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100조원이 넘었다. 국가부채 비율은 50%를 넘었고, 이 추세라면 2026년에는 67%로 위험수위인 60%를 훌쩍 넘게 된다.
반면 정부 효율성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전 세계 6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한국 정부의 효율성은 36위로 중하위권이다. 국가 전체 경쟁력 순위(27위)보다 9계단이나 낮다. 카자흐스탄(25위), 카타르(7위) 등 중동과 중앙아시아 국가보다 낮다. 우리가 비교 대상으로는 삼는 싱가포르는 4위, 대만은 8위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공공복지와 치안 등 필수 공공 서비스를 제외한 공적 부문의 비효율을 납세자들이 언제까지 용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철밥통’이 깨지는 신호는 젊은 공무원들의 대규모 공직 이탈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한 해에 퇴직한 공무원 4만4000명 중 임용 5년 차 이하 비율이 25%인 1만 명에 달한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1992년 이후 처음으로 30 대 1 밑으로 떨어졌다.
2030 젊은이들의 선택은 어디로 향하는가. 올 상반기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들의 전체 고용 중 청년(만 15세 이상~29세 이하) 고용은 전체의 37.6%인 1만7397명이었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인원 6126명의 약 3배다. 지난해 청년 창업 건수는 2만875건으로 전년보다 4.3% 증가했다. 모든 숫자가 공직사회의 붕괴와 젊은 인재의 민간행(行)을 보여주고 있다.
공직이라는 사회적 책임과 그에 걸맞은 명예와는 별개로 직업으로서의 매력은 반감하는 반면 활력 넘치는 민간의 흡입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적자원이 급격히 감소하는 사회 구조를 감안하면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아직 “어떻게 따낸 공무원증인데…”라는 미련이 남았다면 버티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안정과 보상이라는 특권을 모두 누릴 순 없다. 더 이상 ‘신의 직장’은 없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개혁당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