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숨지면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사인증여(死因贈與)도 유언처럼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근저당권말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내연녀인 B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A씨는 자신이 사망하면 부동산을 이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사인증여 계약을 맺었다. 이 부동산에는 B씨 명의로 최대 15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그런데 A씨와 B씨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들은 B씨가 길렀고 A씨는 매달 20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했다. 이후 A씨는 자신이 약속한 사인증여를 철회한다며 법원에 근저당권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의 쟁점은 유언에 따른 증여를 언제든 철회할 수 있게 한 민법 조항을 사인증여에 적용할 수 있는지였다.
민법 1108조 1항은 유증(유언에 의한 증여)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민법 562조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는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다.
1심과 2심 법원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부동산을 증여하겠다는 각서가 철회됐기 때문에 더는 근저당권의 효력이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역시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사인증여 역시 증여하는 사람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실질적 기능이 유언과 다르지 않다고 봤다. 사인증여도 유증처럼 증여자의 최종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사인증여도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해 철회가 허용된다는 판단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