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화재로 타버린 숭례문 단청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천연안료 대신 값싼 화학 안료를 사용한 홍창원 단청장과 제자가 국가에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이민수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정부가 홍 단청장과 제자 한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은 공동으로 9억4550만4000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홍 단청장과 한 씨는 공사가 마무리된 2013년 2월부터 연 5%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더해 약 14억원을 정부에 지급해야 한다.
홍 단청장은 2012년 8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숭례문 단청 복구공사를 맡아 진행했다. 홍 단청장은 전통 복원에 자신 있다고 문화재청에 밝혔지만, 전통 기법으로 단청을 복구해본 경험은 1970년 스승이 하는 공사에 잠시 참여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는 처음 한 달 동안만 천연안료와 전통 접착제를 사용하는 전통 기법을 썼다. 이후 색이 잘 발현되지 않고 추워진 날씨 탓에 전통 접착제인 아교가 엉겨 붙자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계약을 어기고 화학 안료 지당과 화학 접착제 아크릴에멀전을 사용했다. 주로 새벽 시간대 작업해 감리를 피했다. 이렇게 복원한 단청은 결국 3개월 만에 벗겨졌다. 정부는 2017년 3월 홍 단청장과 한 씨를 상대로 숭례문 단청의 전면 재시공에 필요한 11억8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홍 단청장과 한 씨는 재판에서 화학 안료를 섞어 써 단청이 벗겨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숭례문 단청의 균열 및 박락이 피고들의 재료 혼합 사용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이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피고들은 문화재청과 협의해 결정한 전통 재료를 사용해 단청공사를 시공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학 재료의 혼합 사용은 그 자체로 원고가 계획했던 전통 기법대로의 숭례문 복원에 어긋나고 하도급계약에도 위배된다"며 "피고들은 문화재청과 협의한 방식에 반해 숭례문 단청을 시공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전통 재료로 시공한 일부 구간에서도 단청이 벗겨진 점, 문화재청이 홍 단청장에게 공사를 빠르게 완성해달라고 요구했던 사정 등을 감안해 이들의 배상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