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SMR 동맹'…SK, 3200억원 투자

입력 2022-08-15 17:01
수정 2022-08-16 00:37
SK그룹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기업 테라파워에 3200억원을 투자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세대 원자로인 SMR을 앞세워 국내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탄소중립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구상이다. 최 회장은 빌&멀린다 게이츠재단 공동이사장 자격으로 15~17일 방한하는 빌 게이츠와 단독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차세대 원자로에 첫 투자15일 SK그룹에 따르면 SK㈜와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 테라파워에 대한 2억5000만달러(약 3265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완료했다. 테라파워의 7억5000만달러(약 980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게이츠 이사장과 함께 공동 투자자로 참여했다.

SK그룹이 테라파워에 투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두 회사는 지난 5월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지분투자에 대해 협의해왔다. 회사 측은 구체적인 지분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라파워는 게이츠 이사장이 2008년 설립한 회사다. 차세대 원자로인 SMR의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FR 기술은 고속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을 통해 발생한 열을 액체 나트륨 냉각재로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동 중인 3세대 원전에 비해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진일보한 4세대 원전 기술로 꼽힌다.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높은 안전성 확보를 통해 차세대 SMR 기술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테라파워는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SFR 기술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8년이다. “SMR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SK의 테라파워 투자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테라파워의 이번 투자 유치는 지금까지 차세대 원전업계 단일기업 기준으로 최대 규모다. 테라파워는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SMR 혁신기술 개발 및 사업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SMR 시장은 글로벌 탄소중립 열풍에 힘입어 2019년 45억7000만달러에서 2040년 300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SK는 테라파워의 SMR을 앞세워 무탄소 전력 수급을 통한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서겠다는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국내와 동남아 등에서 테라파워의 원자로 상용화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해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탄소중립 조기 달성을 선언한 뒤 1년여간 검토를 거친 끝에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은 이날 방한한 게이츠 이사장과 16일 오후께 만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SK와 테라파워가 게이츠 이사장의 방한 시점에 맞춰 이번 지분투자 계획을 공동 발표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이츠 이사장은 16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감염병 대응 국제공조를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다. 게이츠 이사장은 2013년 방한 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만찬을 하고 현안을 논의했다.

SK 관계자는 “아직 면담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최 회장의 미국 방문 당시 게이츠 이사장과의 만남 여부가 주목받았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