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검찰'이 때리고 진짜 검찰이 또 때리고…네이버의 눈물 [황정수의 테크톡]

입력 2022-08-14 15:13
수정 2022-08-14 15:56

네이버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압수수색을 받았습니다.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입니다. 2015~2017년 네이버가 부동산정보업체에 “매물 정보를 경쟁사에 넘기지 말라”고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날 포털엔 '네이버 부동산 갑질, 검찰 압수수색'이란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네이버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합니다. 이번 정권의 기반인 검찰, 그 중에서도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이 2015년 부장을 맡았던 실세 부서 공정거래조사부의 압수수색을 받게 됐으니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네이버 내부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2년 전 같은 혐의로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는데, 이번엔 '진짜 검찰'이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공정위는 고발 안 했는데…중기벤처부가 '검찰고발 요청'이 사건은 2020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를 같은 혐의로 제재를 해서 이미 화제가 됐었습니다. 당시 네이버는 "경쟁사가 '확인매물정보'를 마음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매물을 주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십억을 들여 '확인매물'을 골라내는 기술을 만들었고 특허까지 받았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겁니다.

공정위는 네이버에 10억원 규모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공정위는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습니다. '고발까지 갈 중대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런데 중소벤처기업부가 느닷없이 지난해 11월 목소리를 냅니다. 공정위에 "네이버를 고발하라"고 요구한거죠. '의무고발요청권'이란 제도에 근거합니다. 의무고발요청은 중기벤처부가 공정거래법·하도급법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을 ‘고발하라’고 요구하면 공정위가 무조건 검찰에 고발하는 제도입니다.

공정위는 중기벤처부의 요구에 따라 검찰에 고발을 했습니다. 공을 받아든 검찰은 9개월이 지나 네이버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중기부 공무원이 공정거래법 전문성 있나(?)기업이 범법 행위를 했으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한 번 맞은데 또 맞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네이버는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의 제재를 받자마자 중기벤처부가 '고발여부를 심의할 것이니까 소명을 하라'고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네이버의 혐의에 대해선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범법 기업으로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인겁니다. 그런데 압수수색 소식이 퍼지면서 네이버는 '부동산 갑질'의 대명사가 돼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법조계와 학계에선 의무고발요청제에 대해 “기업이 겪는 대표적인 이중 규제”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 네이버처럼 의무고발요청제 대상이 된 기업은 딜리버리히어로(배달의민족), 미래에셋, 현대중공업 등 21곳에 달합니다.

의무고발요청 권한을 가진 중기벤처부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기벤처부는 내부 직원과 외부 인사로 구성되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고발 요청을 한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중소기업 정책만 맡아온 공무원들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을 다루는 것입니다. 심의위원 명단, 회의록, 의결서 비공개…'밀실 논의' 지적도심의위원회에 속한 외부 인사가 공정거래법 전문가인지 검증할 방법도 없습니다. 중기벤처부는 심의위 구성과 회의록, 의결서 모두 공개하지 않습니다.

중기벤처부가 ‘여론’이나 ‘정치권’ 눈치를 보며 의무고발요청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상당합니다. 제도 도입(2014년) 이후 2018년까지 매년 5건에 못 미쳤던 의무고발요청 건수는 민주당 출신 실세가 중기벤처부 장관을 맡았던 2019년 8건, 2020년 13건으로 급증합니다. 법조계에선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을 고발하는 판단 근거가 경쟁 제한성이 아닌 중소기업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됐다”며 “의무고발요청제가 대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이 됐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의무고발요청제는 공정거래법을 다루는 공정위도 중기벤처부에 협의를 요청할 정도로 문제 있는 규제로 꼽힙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공약을 통해 '조화로운 운용'을 말하며 제도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난 3월 이후론 의무고발요청이 한 건도 없는 상태입니다.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나오는 제도에 대해선 하루 빨리 개선점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번 정부가 내세운 ‘시장 중심 경제’에도 부합하는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