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한화그룹 투자…영풍-고려아연 '한 지붕 두가족' 깨지나

입력 2022-08-11 13:09
수정 2022-08-17 10:15
이 기사는 08월 11일 13:0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의 설립 이후 3대째 '한 지붕 두 가족' 지배구조를 유지해온 영풍그룹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그룹 알짜 계열사인 고려아연이 최근 한화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주요주주로 초청하는 의사결정에 장형진 ㈜영풍 회장이 돌연 불참하면서다. 시장에선 이번 한화그룹의 출자를 계기로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또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한화임팩트의 미국 투자 자회사인 ‘한화H2에너지USA’로부터 4717억원을 확보하는 안건을 승인한 지난 5일 이사회에 11명의 이사진 중 장 회장이 유일하게 불참했다. 장 회장은 고려아연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 일원이다. 주주 가운데 개인으론 가장 많은 지분(3.83%)을 보유 중이다. 장 회장이 고려아연의 이사회에 불참한 건 최근 3년간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업계에선 "장 회장이 이사회 전날에서야 해당 안건을 보고받아 격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고려아연 측은 "불참한 것은 맞지만 사유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재계에선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간 긴밀한 교감으로 이번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평가됐다. 최 부회장은 지난해 고려아연 대표이사에 오른 뒤 회사의 해외 투자와 신사업 등 주요 의사결정을 총괄하고 있다. 이번 투자로 한화H2에너지USA는 고려아연 보통주 99만3158주(지분율 5%)를 확보해 주요주주에 오르게 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장 회장 측이 최 부회장이 주도한 이번 거래에 동의하지 않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왔다.

영풍그룹은 창업 이후 73년간 두 집안간 공동경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장씨 일가가 전자계열을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등 비전자계열의 경영을 맡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유지됐다. 다만 3대째로의 승계를 앞두면서 증권가에선 두 집안간 계열분리 가능성이 수차례 언급돼왔다. 큰 폭의 지배구조 변동 없이도 최 씨 일가가 보유 중인 재원을 마련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의 지분을 취득하면 계열 분리가 마무리되는 구조다.

일각에선 이번 한화그룹의 출자가 고려아연의 지배력을 둔 두 집안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대주주인 ㈜영풍이 지분 27.49%를 보유하고 있고, 최 씨 일가가 약 8~9%를, 장 씨 일가가 약 5~6%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영풍의 지분은 장 씨 일가가 28.56%를 직접 보유 중이고 개인회사 등을 통해 보유한 지분까지 합치면 50%대에 달한다. 단순하게 최 씨 일가의 지분(13.06%)과 비교하면 단연 우위에 있다. 하지만 최 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오랜 기간 경영해 회사의 경쟁을 키워온만큼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하면 고려아연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9.71%)과 나머지 지분 38.34%를 보유한 기관투자자 및 소액주주들이 최씨 일가 편에 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