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를 꿈꾸는 아빠들과 회장님들을 위한 안내서[김태엽의 PEF썰전]

입력 2022-08-10 16:13
수정 2022-08-16 13:32
이 기사는 08월 10일 16:1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먼저 오해하실까봐 미리 이야기해두겠는데, 오늘의 글이 부자들을 위한 글은 절대 아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필자도 흙수저, 그중에서도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쫄딱 망한 '진흙탕 수저' 출신이고, 나는 물려줄 가업도 없을 뿐더러 내가 하고 있는 업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맘 편하게 보시길.

여름이라고 쓰고 장마라고 읽는, 알 수 없는 계절이 절정을 치닫고 있다. 우리와 쭉 함께 갈 것 같은 코로나 녀석들이 (또다시) 새록새록 고개를 들지만, 나는 역시나 또다시 배를 째고 무려 비행기로 24시간이나 걸려서 (차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무려 26시간이다!) 도착한 남반구의 어느 오지에서, 눈사태와 돌풍을 피해 스노우보드를 타다 왔다. 정확히 말하면, 스노우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위해 스노우 체인을 꼈다 뺐다 하면서 낡은 밴을 몰고 매일 2시간 이상 꼬불꼬불 절벽 길을 운전하고 있는데, 집에 돌아오면 또 장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을 씻기기를 반복했다. 이상하게 휴가 일수가 늘수록 피곤이 쌓이고, 흰머리가 늘고, 얼굴이 초췌해지는 것이 신비롭다(이런 일을 매일 하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그야말로 위대하다!!!!).

예상 못한 돌풍과 알 수 없는 항공사의 결정으로 귀국 비행편이 취소되고, 덕분에 눈길을 뚫고 옆옆옆 도시에 가서 코로나 검사도 다시 받고, 나흘 연속 눈과 비에 시달리면서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하루에 다섯 시간씩 운전을 해댔더니 혓바늘이 돋았다. 천신 만고 끝에 탄 귀국행 비행기에서 키보드도 없이 패드로 이 글을 깨작깨작 쓰니, 랩탑을 무슨 배짱으로 안가져왔는지 내가 너무너무 한심하다. 그래서, 결국 휴가는 어땠냐고? 흠.

당연히 최고였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신 덕분에, 첫째 딸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같이 여행에 나섰다. 어쩌면 평생 없어지지 않을 지도 모를 흉터를 남긴 부상을 입고도, 무섭지 않은 척 우리 엘봇(첫째딸의 별명이다)은 다시 스케이트 보드에 올라가고,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서고, 스노우보드를 타고, 심지어 나는 힘들어 죽을 것만 같은 절벽을 씩씩하게 타고 내려왔다. 둘째 녀석은 한술 더 떠서 엄마 아빠와 누나가 옆옆 도시에 간 사이, 형들이랑 같이 산에 올라가서 씩씩하게 스노우보드를 타고 나무와 바위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림엽서에나 어울릴 것 같은 경치의 산속에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이들과 (그리고 당연히 와이프느님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다.

그럼 즐거운 휴가지에서의 추억말고 우리의 귀여운 아가들(혹은 우리의 귀여운 경영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다름 아닌 가업 승계, 혹은 상속. 내가 하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 중에 좋아보이는 것들, 혹은 내가 내 온갖 정성과 노력, 피땀을 쏟아 이룬 것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 어쩌면 생존 본능과 종족 보존의 근본적인 본능에 따른 행동.

오늘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런 가업 승계에 관해서, 어떻게 후계 구도를 짜야하고, 어떻게 후계자를 키우고, 어떤 사업을 물려줘야 할지 혹은 엑시트(투자금 회수)해야 할지를 결정할 때 생각해야 되는 내용, 그리고 그 방법을 나누겠다. 다만, 세금을 줄이거나 탈법을 하는 것을 혹시나 희망하시는 분은,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거의거의거의거의 불가능하다. 희망을 접으셔라(물론 천천히 내거나 좀 효율적으로 내는 방법은 있다. 궁금하다면? 전문가를 당연히 찾으셔라. 지난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약은 약사에게, 병은 의사에게, 그리고 당연히 세금은 세무사에게, 그래도 모르겠으면 필자에게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문의하시면 되겠다).

이 주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관점의 차이다. 오너 기업에서 오너들을 모시고 일하고 있는 대다수의 월급쟁이 충신 혹은 야심찬 경영진들을 위한 '회장님 사용법'이자, 지금은 물려줄 것이 없는데 뭔가 물려주고 싶은 샐러리맨들, 그리고 내가 하는 사업을 도대체 물려줄 수나 있는지 고민 중인 자영업자 분들을 위한, 불편해서 아무도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믿거나 말거나, 본인 자산이 조 단위, 아니 대략 4000억~5000억원 언저리가 되지 않으면 (거의) 모든 회장님들, 창업가들 그리고 자산가들이 나에게 묻는다. "김 대표, 세금 좀 적게 내고 합법적으로 물려줄 방법이 있을까?" 나의 반응은? "있을 수도 있죠. 근데 물려받고 싶어 하나요?"

1.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 나의 귀여운 아들 딸 손자 사위들은 준비가 되어있나?

한 십여년 쯤 전이었나? 내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잘 생기고 똘똘한데 결혼도 일찍하고 유럽의 명문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A군은 미국에서 잠깐, 그리고 싱가포르로 들어와서 미국에서 일하던 회사의 아시아 HQ에서 다시 승진을 거듭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뭐, 나도 당시에는 청년이었다!). 일찍부터 자수성가하신 A군의 아버지는 마침 나와 동향이었던 관계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집안이었고, 덕분에 승승장구하는 A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내가 오히려 으쓱하곤 했다.

그러던 A군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돌연 경상도의 한 중소도시에 정착을 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온다는 A군의 자초지종을 들어본 결과, 제조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예상치 못하게 암투병을 시작하셨고, 외동아들이었던 A군은 평소의 성실함과 효심이 겹쳐 본인의 커리어와는 동떨어진 '지방 금속가공 제조업체'의 낙하산 전무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침 컨설턴트로 경험해보았던 산업인지라 오지랖으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던 나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A군으로부터 회사를 인수해달라는 갑작스런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6개월 만에 만난 A군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강성노조를 처음 접해본 A군의 멘탈은 이미 출타 중이었고, '화이트칼라 인텔리 소년'이 일하기에는, 쇠깎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장 환경과 아버지의 병수발이 벅찼던 것이다. 급기야 A군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갑자기 한쪽 눈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기괴한 질병을 겪기 시작했다.

급작스럽게, 그리고 원치않게 받은 아버지의 사업, 제조업에 대한 경험 부족과 나이 많은 기존 경영진과의 케미 부재, 가족의 병수발, 거기에 평온한 외국생활을 동경하던 와이프와 외국인 학교를 보내던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생전 처음하는 주말 부부 생활까지. 내가 생각해도 A군의 가업승계는 아버지의 욕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한 6개월을 찾아다닌 끝에 A군은 아버지를 설득해서 회사를 동향에 있는 다른 중견그룹에 매각하게 되었고, A군은 (세금을 싹 다 내신) 부모님을 모시고 싱가포르로 돌아가서 치료와 요양 그리고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소비재 마케팅 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버전이 다른 이런 상속 이야기들은 나에게 무수히 많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하던 유학생 아들을 억지로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비서실장으로 앉히고, 경영수업을 하는 건지, 무한 잔소리를 하는건지, 출장 가방모찌를 훈련시키는 건지 모를 몇 년 간을 겪게 하고, 급기야 부자간 의절 직전까지 갔던 상장사 B회장님 케이스나, 세 아들들에게 골고루 "아빠가 알아서" 나눠준 사업들이 서로 맞지 않아 결국 그 아들 중 하나는 스스로 도피 유학 후 창업을 하면서 십 수년이 지난 후에야 극적으로 부자간, 그리고 형제간 화해를 한 C상장사 가족의 사례라든지,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전공하고 해외 유수 대학과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교수직에 도전하던 딸이, 돌연 음악이 원래 너무 싫었다며 20여년 넘게 하던 음악을 때려치고 학부로 경영대를 다시 가면서 결국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게 된 T회사의 사례라든지. 일일이 적기에도 귀찮을 정도로 많다.

짧게는 5년 길게는 20여년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다수의 형님 누님 동생들 그리고 회장님들의 결과를 공유하자면, 결과적으로 가업 승계가 잘 된 순서는 다음과 같다. (A는 최고, F는 최악.)

<i>A. 애초부터 가업 승계를 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부지런한 아들/딸
B. 인성이 좋은데 공부는 좀 덜했지만 부지런한, 그리고 딱히 다른 욕심이 없는 아들/딸
C. 다른 걸 해보고 싶어서 해보다가 자리잡지 못하고 뒤늦게라도 철들어 들어온 아들/딸
D. 이것 저것 기웃기웃했지만 딱히 하는 게 없던 아들/딸
E. 하기 싫어서 망해도 좋으니 다른걸 하겠다고 우긴 (똑똑한) 아들/딸
F. 아무 생각 없는데, 일도 딱히 안해 본, 안 부지런한 아들/딸</i>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챘겠지만, 전문직 공부를 시작한 자녀들은 가업승계의 제일 나쁜 선택지 중 하나다.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는 좀 다르려나), 체육인, 예술가, 교수, 연예인 등등을 꿈꾸거나 하고 있는 자녀들은 그냥 그 길을 잘 가도록 지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경영진이 될 자질이 보이지 않거나 준비가 안 된 자녀들은, 나의 두번째로 귀여운 경영진들과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주주나 자산가, 혹은 건물주의 길을 걷도록 준비해주길 바란다. 그래도 꼭 가족 누군가에게 가업을 물려주고싶다면, 내 자녀보다는,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를 찾아보자. 실제로 적지 않은 그룹의 회장님들이 전략적으로 똘똘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을 찾아서 '사위'라는 타이틀의 가족으로 만든 후 기업과 자녀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설픈 아들들보다 성공 확률도 아주 높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위들은 하나같이 인성도 너무 좋고, 아내들, 자식들에게도 살갑게 잘한다. 사위들의 인성이 (머리가 아니다!!!!) 성공의 제일 큰 요소로 보이는데, 머리는 좋은 경영진으로 보강할 수 있지만, 장인어른의 그늘 밑에서 출퇴근 시간은 물론, 신용카드와 운전기사, 비서 그리고 핸드폰 사용 내역을 '회장님'이 언제든지 24시간 주 7일 알 수 있다는 압박을 이겨내고, 또 좋은 경영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절대절대 아니다(나같은 고집장이에 비뚤어진 외동아들 캐릭터는 절대 불가능하다). 이는 비단 중소기업뿐 아니라 H 혹은 O와 같은 대기업 가문에서도 종종 관찰되는, 오랜 기간 검증된 방법이다.

내 자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내 사위/며느리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고, 그들의 의사를 확인한 후 가업을 승계하는 것은, 실상은 새로운 세대의 경영진을 미리 뽑아서 육성하고 차근 차근 일을 맡겨보는, 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승계가 얼마나 부드럽게 잘 되고 있는지가 실상 그 창업주 혹은 회장님의 진짜 실력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내 자식들, 내 경영진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면, 그건 결국 나의 경영 능력이 하수라는 뜻이다.

그럼 내 귀여운 아이들이 내가 피땀 흘려 일궈낸 가업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다시 한번 극단적으로 편협한 시각을 주절거려보겠다.

(1) (극히 주관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절대 "내 회사" 혹은 "내가 일하고 있는 그룹의 신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하지 말라.

사실 이 점은 내가 지난 20년간 이래저래 알고 지내는 회장님, 창업주분들과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은 충돌을 겪었던 부분이다. 흑백논리로 결론나기 쉬운데,

그 회장님들 중 딱 절반은 "조기교육 옹호자"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시라도 빨리 내 회사로 데리고 와서, 내가 직접 경영을 가르쳐주면서 회사의 임직원들 그리고 거래처 사람들과 친분도 어린 나이부터 쌓고, 그 산업에 뼈를 묻게 해야한다고 보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 주의자로, L그룹처럼 JV를 맺고 있는 우호적인 다른 그룹의 계열사에 신입사원으로 보내든지, 아예 생판 모르는 남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든지, 까놓고 부탁해서 컨설팅이나 IB 혹은 회계자문사 등에서 주니어로 박박 구르든지, 극단적으로 또 다른 L그룹처럼 유학 중에 찾아낸 슈퍼마켓이나 창고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로 처 일을 시작시키는 경우가 있다.

조기교육 옹호자의 경우, 그 자녀들이 좀 순하고, 그 기업 안에 다양한 계열사와 부서, 그리고 해외 지사 등이 있어서 비교적 다양한 조직을 경험하고, 밑에서 올라와도 충분히 섞일 수 있을 만큼 조직이 크면서, 또 오너 아들 딸이 자기랑 승진을 경쟁한다고 해서 기죽지 않는 경영진들이 있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물론 그렇게 일하는 아들 딸들은 비교적 우물안의 행복한(?) 개구리가 될 수 있겠지만, 뭐 공주님 왕자님 뽀뽀를 받고 미래에 회장님 주인공으로 변신할 수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근데, 문제는 대다수의 가업 승계를 꿈꾸는 기업들이 그렇지 못한 규모일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큰 물을 못 겪어본 개구리에서 끝날 가능성과, 그렇게 왕자님, 공주님으로 변신하기 힘든 개구리를 모시기에는 배알이 꼬이는 경영진간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너무너무 세게 젊을 때 사서 고생 주의를 주창하고 있는데, 장점은 그 아들 딸들이 다른 회사에 말단으로 들어가서 박박 구르면서 일을 그래도 좀 제대로 배울 수 있고, 특히 물려받을 회사보다 더 큰 회사와 조직에서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면 추후 세대교체를 통해 가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실상 우리나라 20대 대기업의 3세 4세들이 유수의 컨설팅 회사에서 몇 년간 막내로 들어와서 경험을 하다 아빠 회사로 돌아가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이렇게 훈련받고 돌아간 차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아주 훌륭한 경영진으로 성장한다. 물론 이렇게 사서 고생한 차세대 경영진들이 비슷한 나이들끼리 뭉치며 커서도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여간 귀엽고 이쁘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런 옵션에도 단점이 있다. 자칫 더 큰 물에서 놀게 했다가 상장사 I사처럼 외동아들이 아빠 회사를 물려받기 싫다고 친구들이랑 창업을 낼름 해버린다든지, 반대로 S사처럼 아들 둘이 다 직장생활이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투자를 가장한 건물주 및 아마추어 골퍼 생활을 일찌감치 시작해버리는 케이스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자녀가 충분한 경험을 해보고 진짜 일이 맞지 않는다면 회사는 전문경영진에게 맡기고, 유럽형 패밀리 오피스 형태의 자산 관리 회사의 주주로 남게 하는 것도 적극 권장한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이 또한 전문 경영진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2) 기본적인 재무와 투자 개념을 반드시 교육시켜라.

가업승계, 혹은 경영진을 통한 승계를 꿈꾸는 회장님들, 회장실 임원들께 이야기하고픈 두번째 중요한 점은 재무 교육이다. 통상 제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자녀들을 공장에서 시작하게 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요즘은 이렇게 하면 아들 딸들이 금방 때려치려고 한다. 조심하셔라. 그리고 생산, 기술 개발, 유통 같은 비교적 전문 분야들은 오랜 기간 그 회사에서 육성한 경영진들을 중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신 숫자 공부, 회계 공부는 내 회사를 물려받든, 아님 본인 회사를 차려서 나가든 기본이 되는 공부다. 게다가 초반에는 좀 책상에서 앉아서 해야하는 공부가 빡세게 있는데, 우리의 자녀들이 노안이나 목 디스크가 와서 책상에 앉아있기 힘들게 되기 전에 끝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다시 부활했지만 한 때 거의 지도에서 사라질 뻔한 Y그룹이 있었다. 그룹의 아들들 중 나는 둘째 아들을 대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공부도 잘 했고 명문대를 다니면서도 항상 형들한테 깍듯하고 술버릇도 좋고 얼굴도 잘생겨서 다 가진 좋은 동생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회장님께서 건강이 좀 안 좋아지시게 되자 그룹에서는 부랴부랴 두 아들들을 불러서 가업 승계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시작이 국내 생산 부문, 그리고 미국 판매 지사였다는 점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Y그룹의 비서실 입장에서, 나름 한 명의 왕자님은 현재 제일 중요한 부분에, 다른 한 명의 왕자님은 미래에 성장할 수 있는 곳에 미리 파견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당시 실세로 자리잡고 있었던 그룹 CFO가 회장님의 장악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그룹을 꿀꺽하려고 작당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었다. 회장님이 손을 놓기 전까지 4~5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회계와 재무에 관한 지식과 훈련이 부족했던 두 아들들의 눈을 가리고 이 CFO는 여기저기서 꿀 빨기와 자금 세탁 그리고 사업 빼먹기를 시전하였고, 그 와중에 재무구조가 서서히 악화되면서 진행하던 신사업이 삐끗하자 그룹은 급속도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채권단 주도로 주력 계열사를 강제로 매각당하고, 그룹의 외형은 1/3 이하로 쪼그라들게 되었고, 뒤늦게 살림을 차리려고 돌아온 두 아들들은 그 이후 15년 넘게 고생고생을 하며 Y그룹을 다시 작지만 그래도 내실있는 기업으로 간신히 살리게 되었다.

(3) 너무 늦게 물려주지 마라…40대 중반 이후면 이미 늦었다.

마지막으로 후계구도를 짤 때 내가 주장하는 것은 손자들이 너무 크기 전에,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노안이 오기 전에 가업을 물려주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회장 형님들은 불끈 한다. "아니, 김 대표, 내나이 이제 겨우 65인데, 아직 블루티에서도 티샷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런데도 내가 한 발짝 빠른 선수 교체, 세대 교체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래도 좀 어릴 때 회사의 주니어 스텝으로 들어간다면 (i) 기존 경영진과의 부드러운 교감을 만들 수 있고, (ii)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에너지가 좀 많이 남아있고, (iii) 그 와중에 실패를 한 두번 하더라도 극복하고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주변에도 회장님들이 너무너무 좋으신데, 정작 본인들이 너무 정정하셔서 40대 후반이 다 되어가는 아들들을 아직 힘없는 비서실장처럼 쓰시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10년 전 20년 전에는 이런 것들이 일상적이었으나,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온갖 스타트업들이 전통산업들을 위협하고 있고, 20대 30대의 패기 넘치는 창업가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보다 더 용감한 VC들 PE들을 등에 업고 덤비고 있다. 이런 젊고 겁없는 도전자들을, 정년 퇴임까지 15년도 안 남은, 그러나 거의 평생을 온실 속에서 혹은 따뜻한 아빠 품에서 편하게 '뽀다구'나게 커왔던 중년의 2세대들이 싸워서 이길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아빠의 착각일 수 있다.

나도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몸 사리지 않고 물불 안가리고 일할 때가 30대 중반~40대 중반 정도로 생각되는데, 이런 에너지 레벨 황금기에 본인이 살짝 무서운, 그러나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만 거기서 배우고 더 큰 경영진으로 클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30대부터 늦어도 40대 초반에 승계를 완료한 기업들이 다음 세대 먹거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찾고, 또 아버지와의 사이도 틀어지지 않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 반대로 50이 넘어서야 사장, 회장직을 물려주려는 많은 그룹들은, 회장님은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회장님을 모시고 있던 50대 후반에서 60대 초중반 창업 공신 중역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면서 이사회를 정치판으로 끌고가는 모습을 종종 연출하게 된다. 상장사인 A사, 비상장사 였던 D사, 역시 비상장사였던 S사 등등에서 이사회 멤버로 내가 올라가서, 회장님-창업공신 임원-회장님 아들 사이에 끼어서 내가 누구 편을 들기도 애매하고, 괜히 누구 편을 들었다가 미운털이 박혀서 고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면 이제 물려줄지 아닐지 결정을 하고, 우리 자녀들 혹은 경영진들을 어떻게 평가해서 어떤 훈련을 시키고 언제 물려줄지 그림이 잡혔다고 치고, 마지막 제일 중요한 결정을 해야한다. 도대체 뭘 물려줘야하지?

2.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새로운 성장 사업 vs 안정적인 전통 사업.

물론 마음 같아서야 성장도 하고 안정적이면서 승계받기도 편하고 앞으로 경쟁자가 없는 사업을 세금도 많이 안 내고 낼름 물려주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실 것이다(나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실상은? 당연히! 그런 건 없다. 물론 내 손에 있는 사업이 딸랑 하나밖에 없다고 그걸 그냥 바로 물려줄 것이냐? 당연히 그러면 안된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i>(1)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은 개고생길의 전주곡이다.</i>

우선 절대 비추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이다. 종종 신시장을 개척한다든지, 선진 문물을 들여온다든지, 미국/유럽/일본에서 10년 앞서서 시장이 생겼다고 하면서 신사업을 작게 시작하고 이걸 아들들 딸들한테 맡기는데, 이건 그냥 개고생의 진흙탕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외국계 컨설팅 N사 부사장을 하고 있던 내 대학원 동기 R형님은 월급 파트너의 따뜻한 온실에서 십 수년 적지않은 돈을 벌어오던 어느날 어느 미팅 룸에서 어느 창업주 X님과 커피타임을 하면서 인생을 바꾸는 현타 경험을 하게 된다. "R 대표, 과연 당신이 하고 있는 게 당신이라서 하는거야 아님 N사 간판이 있으니까 하는거야? 그거, 진짜 당신 꺼야?" 상당히 똑똑하고 고집도 있는 R형님은, 당시를 필자에게 설명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입으로는 뭐라고 하고 싶은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

얼마간의 고민 후 그 X 창업주님을 다시 찾아간 R형님은 "살짝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뭐라도 하겠으니 아이템을 좀 주셔라"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 때 그 X 창업주님은 몇 가지 아이템들을 던져줬고, 그 중에서 R형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믿기 힘들지만 진짜라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의 판권을 낼름 집어들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던 X 창업주님은 두 번째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흠, 이런 신제품은 보기는 멋있지만 힘든데…돈 버는 거는 사업 아이템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거든."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 채 R형님은 '완전 연소를 유도해서 내연기관의 연비를 10% 이상 올려주는 첨가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영학 석사 및 컨설턴트 출신답게 기술을 꼼꼼이 검증하던 R형님은, 진짜 믿기 힘들지만 6개월이 넘는 실증 기간동안 검증된 데이터를 정리해서, 관련 업체를 찾아다니면서 기술 영업을 시작했다. 내 말은 못 믿어도 데이터는 믿을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가지고.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들어도 믿기 힘든 기술은, 숫자를 들이밀어도, 논문으로 방어해도 그 선입견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상식을 벗어난 신시장을 컨설팅 출신의 투자자가 만들어가는 것은, 이른바 성장에 대한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사업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결국 R형님은, 사업 초기 몇 년간 수 억원을 까먹은 다음에야 X 창업주님의 의미심장한 말을 이해하게됐다. 쉽게 가자. 이미 무르익은 시장으로 접근하자.

제품의 성능에는 자신이 있었던 R형님은, 고민고민 끝에 첨가제를 넣었을 때 완전 연소가 유도되면서 "배기 가스의 배출 자체도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치 협심증 치료제로 출발한 우리의 영웅 '비아그라'처럼 부작용을 주 목적으로 해서 제품을 판매해보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배기가스 중에서도 특히 황의 배출을 줄여주는 탈황제' 시장은 이미 수 십년간 잘 형성이 되어있었던 터라, 가격만 맞으면 이런 저런 공장에서 어렵지않게 한 번 납품해 보라, 샘플을 한 번 써보겠다는 답들을 듣게 되었고, 그제서야 사업은 고정비를 커버할 수 있는 최소 규모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단계를 몇년 거치고 나서야, 단골 고객들을 중심으로 사실은 믿기 힘든 '연비 개선' 기능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지옥같았던 창업기를 지나 4년차인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성장 궤도를 올라탈랑말랑하는 단계로 가게 되었다.

<i>(2) 영업권, 자산, 주식, 경영권 중 골라라.</i>

가업을 물려 줄지 말지를 결정할 때, 두번째로 고심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경영권을 물려줄 건지, 아니면 가업을 통해서 나오는 현금 창출 능력(cashflow) 혹은 '뽀다구'(status)를 물려줄 건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경영을 직접하는 사장님, 회장님을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1년의 반을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봉사활동과 기부를 실천하고, 유학 가 있는 손주들을 직접 돌보는 멋있는 주주의 삶을 물려줄 수도 있다(제발~!). 주주로서의 의사결정 참여 그리고 이사회 멤버로서 혹시나 겪을 수 있는 법률적 리스크로부터도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자산으로 물려주는 방법도 있다. 즉, 본사 건물이나 공장 땅을 물려주고 sales-and-lease-back 형태로 수 년에서 수 십년간 현금 흐름을 고정시켜주는 것이다. 이것도 불안하다면 브랜드나 영업권을 물려줘도 된다. 브랜드 사용료나 해외 판권을 보유하는 회사를 만들어서 이것만 패밀리오피스 형태의 구조로 만들고 경영에 관심없는 자녀들, 손자 손녀들까지 지분을 주고 초장기 현금흐름을 창출시켜줄 수도 있다.

수 년 전 뉴욕에 있는 록팰러가의 패밀리 오피스로 필자가 직접 찾아가서 경험한 록팰러 창업주의 손자들의 삶은, 부동산 개발자라기보다는 작은 투자회사의 홍보 담당 혹은 비영리단체의 인상 좋은 명예 이사회 멤버의 모습에 더 가까워보였다. 비록 후덕하게 생긴 록팰러 가의 모 이사분의 자산은 수 조원에 이를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경영과 소유, 그리고 홍보/얼굴마담의 역할이 철저히 그리고 동시에 우아하게 분리되어있었다. 나는 이런 패밀리 오피스 형태의 소유구조가 상속에 대한 의무감이 유난히 큰 우리나라 같은 민족에게 오히려 아주 적절한 구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24시간이 넘게 비행기와 공항에 갇혀서 글을 쓰다보니 오늘도 쓸 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이 커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뚫고 나가고, 어떤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할지 한사람의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걱정하는 모습에서 시작되는 가업 승계를 필자는 절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이 정한 한계 안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나보다 좀 더 쉽게, 편안하게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의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 자신 역시 몸뚱아리와 그 속에서 자라난 성격과 지식, 경험 말고는 부모에게 크게 뭘 받아본 적이 없는 흙수저 입장에서 돈만이, 그리고 가업 승계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세상은 넓디넓고 재미있는 일들, 새로운 일들이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감당해줄 수 있는 만큼 고생과 실패를 미리 시켜주자. 그리고 그렇게 넘어졌다가 툴툴 털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내 아이들, 내 경영진들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하나 둘 경험과 공력을 쌓아주다보면, 내가 피땀 흘려 이룬 것보다 수 십배, 수 백배 더 큰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이 큰 것이 꼭 돈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