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 올리비아 뉴턴 존의 히트곡 ‘피지컬(Physical)’을 처음 들은 건 고3 때인 1981년이었다. 디스코 풍에 생동감 넘치는 이 노래 가사를 ‘냄비 위에 밥이 타(Let me hear your body talk)~’로 바꿔 부르며 낄낄대곤 했다. ‘피지컬’은 이듬해 초까지 10주 연속 빌보드 1위를 달리며 ‘빌보드 핫 100’ 최장기간 공동 1위에 올랐다.
이에 앞서 그는 존 트라볼타와 함께 찍은 뮤지컬 영화 ‘그리스’(1978)로 세계적인 ‘청춘 아이콘’이 됐다. 당시 나이 30세에 여고생의 청순미를 마음껏 발휘했다. 이후 수많은 히트곡으로 그래미상을 네 차례나 받았고 빌보드 1위 5회, 음반 매출 1억 장 이상의 기록을 세웠다. 영국에서 나고 호주에서 자란 금발의 신예 가수·배우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팬이 환호했다.
하지만 1992년 유방암 진단 후 30년간 세 차례나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첫 번째 완치 후 재활에 성공한 그는 2013년 두 번째 암에 걸렸다. 그해 5세 위의 언니가 암으로 사망했기에 충격이 더 컸다. 2017년 세 번째 암 진단까지 받았지만 그는 특유의 치유법과 정신력으로 고통을 이겼다.
그 비결은 웃음을 잃지 않는 유머 감각과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감이었다. 2000년과 2016년 내한공연 때 그는 “유머 감각을 가지고 항상 웃어라. 행복해야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지 말고 자신만의 음악을 스스로 찾을 때 성공과 행복이 온다”며 “다만 자신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라”는 조크를 곁들였다.
호주 멜버른에 암치료센터를 개설한 그는 2019년에도 “긍정적인 자세와 의지, 무엇보다 유머 감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해 한 매체가 사망 임박설을 보도하자 “루머가 과장됐다”며 특유의 익살을 과시했다. “내 죽음에 관한 보도는 과장됐다”는 작가 마크 트웨인의 풍자를 인용한 것이었다.
이런 유머와 자존감으로 한 시대를 빛낸 ‘만인의 연인’이 73세로 생을 마감했다. 부고를 접한 어제 아침, 그의 노래 ‘빗속에서 눈물 흘리는 푸른 눈동자(Blue eyes crying in the rain)’를 다시 들으며 마지막 부분의 가사를 오래 음미했다. ‘언젠가 우리가 저 너머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이별이 없는 영원한 세계에서/ 다시 손잡고 거닐 수 있을 거예요.’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