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확정한 제조업 등 구인난 해소 방안은 외국인력을 산업현장에 신속히 공급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비자 발급을 늘리고, 입국 속도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등 산업 일선에서 ‘현장의 요구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달 1만 명씩 신속 입국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이날 뿌리산업 등 제조업과 농축산업의 비전문인력(E-9) 비자 쿼터를 6600명 늘리기로 하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코로나19 이후 입국이 지연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등 6만3000명 중 5만 명을 연내 입국시킨다는 계획이다. 올해가 약 5개월 남은 점을 고려하면 월평균 1만 명가량이 입국하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상반기 입국자를 포함해 총 8만4000명의 외국인력이 올해 입국하게 된다. 외국인력 입국 절차를 단축해 입국에 걸리는 기간은 기존 84일에서 39일로 줄일 방침이다. 또 통산 3, 4분기로 나눠 발급하던 신규 고용허가서를 이달 조기 발급하기로 했다.
내년 쿼터도 10월 확정해 이듬해 1월부터 신규 인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신규 입국자에 대한 고용허가서는 연내 발급하기로 했다. 업종 구분을 두지 않는 ‘탄력배정분 쿼터’도 내년 1만 명 규모로 배정해 수요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외국인으로 채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외국인력을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인난이 심각한 조선업에 대해서는 별도 대책을 마련했다. 긴급한 작업 물량이 발생해 기업으로부터 특별연장근로 신청이 있는 경우 사흘 이내에 신속하게 인가한다는 방침이다. 특별연장근로를 먼저 시행하고 나중에 사후 승인을 신청하는 방법도 허용한다. 한국인 조선업 근로자의 내일채움공제 적용을 받는 연령 한도는 일반 직종(39세)과 달리 45세로 확대한다. 내일채움공제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공동으로 일정 보상금을 적립하고 근속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같은 원청 아래에서 하청 기업 간 일자리를 옮긴 경우 근속이 계속된 것으로 간주하거나, 채움공제 만기 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 운영하는 등 지원 요건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장선 “쿼터 더 늘리고 이직 통제를”이 같은 정부 대책에 대해 대형 조선사 사내 협력사와 뿌리기업 등 중소제조업체들은 “가뭄 속 단비”라고 환영하면서도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와 속도가 현장 요구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사내협력업체 대표는 “2020년 대우조선 사내협력사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3000명가량이었으나 현재는 6분의 1 수준인 450여 명뿐”이라며 “정부의 대책은 아직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 제조업체 대표도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늘린다고 해도 수개월 뒤 입국하면 큰 도움이 안 된다”며 “경기 침체로 막상 외국인 근로자가 대거 입국하는 시점에 노동력이 필요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기업에 인력이 배정되더라도 쉽게 이직할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중소제조업 취업 외국인 근로자들은 체류 기간 중 세 번의 이직이 가능한데, 이에 대해 엄격한 통제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업계에선 “인력을 뽑아도 다른 업종으로 금방 이직해버리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 금형업체 대표는 “수요 대비 외국인 근로자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이 없으면 곧바로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많다”며 “대부분 입사 초기 일당이 높은 농어촌으로 불법 취업하거나 손쉬운 일로 이직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구인난 해소를 위해 노동시장 개혁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도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구인난의 본질적 원인은 저임금·고위험 등 열악한 근로환경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며 “원·하청 하도급 구조 개선, 임금체계 개편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강진규/안대규/곽용희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