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실적 추정치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영향으로 기업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는 모습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증시가 경기 후퇴와 기업 실적 둔화로 대표되는 역금융장세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실적 추정치가 올라가는 자동차와 2차전지 업종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는 조언이다. ○역실적장세 진입
5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약 242조705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초(252조1744억원) 대비 9조4687억원(3.9%) 감소했다. 2분기 실적 시즌을 지나면서 추정치가 급격히 하향 조정되는 추세다.
내년 실적 전망치도 꺾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내년 유가증권시장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연초 283조4765억원에서 최근 261조9426억원으로 21조5339억원(7.6%) 감소했다.
그동안 증권가에서 가장 우려하던 요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구조 특성상 원자재 가격 상승이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최근 원유·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조정을 받았음에도 기업 실적 전망치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더라도 경기 둔화에 따른 실적 부진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경기가 본격적으로 하강 국면에 접어든 이후 인플레이션이 완화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지난달부터 원자재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수요 침체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2차전지 선방
이 같은 역실적장세에서도 실적 추정치가 올라가는 업종을 눈여겨볼 만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단기 박스권 속 종목장세가 펼쳐질 것”이라며 “올해와 내년 기대치가 올라가는 기업은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자동차와 2차전지가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와 2차전지 기업들은 원자재 및 물류 비용을 제품 판매가격에 전가해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2분기 평균 판매단가를 각각 11%, 6% 올렸다. 철강 등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제품 가격에 반영했다. 두 기업은 지난 2분기 컨센서스를 각각 30.5%, 22.1% 웃도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기록했다.
일각에서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가 제기되지만 하반기에도 완성차 업체의 실적 호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조328억원으로 1개월 전 추정치(1조6396억원)보다 24.0% 상향 조정됐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달 6일부터 지난 4일까지 한 달 새 13.9% 뛰었다.
주가가 올랐지만 실적 추정치가 더 빠른 속도로 상향 조정되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도 높아졌다. 현대차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3배로 1개월 전(7.3배)과 3개월 전(7.6배)보다 낮아졌다.
2차전지 양극재 업체들은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가격 결정력을 앞세워 지난 2분기 호실적을 냈다. 글로벌 양극재 시장 1위 업체인 에코프로비엠은 2분기 102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컨센서스를 51.3% 웃돌았다. 포스코케미칼도 영업이익 552억원을 올려 전망치를 72.6% 넘겼다. 리튬·코발트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을 판가로 전가해 수익성을 높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향후 실적도 탄탄할 전망이다. 에코프로비엠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089억원으로 1개월 전(733억원)보다 48.6% 급증했다. 12개월 선행 PER은 같은 기간 44.3배에서 37.9배로 내려갔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