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수신금리 상승 여파로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등 저원가성 예금에서 금융소비자가 이탈하고 있다. 빠져나간 돈은 금리가 연 3%를 웃도는 은행 정기예금에 몰리고 있다.
은행들은 저원가성 예금 이탈로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는 추세다.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 인상과 은행채 발행이 카드사 등 2금융은 물론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금금리 경쟁 나선 은행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73조3602억원으로 전달보다 36조6033억원 감소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700조원을 밑돈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한 달 새 감소 폭(36조6033억원)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어 금리가 연 0.1% 수준에 불과한 요구불예금은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주는 ‘핵심 예금’으로 불린다.
요구불예금에서 빠져나간 돈은 예·적금으로 향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 예·적금 잔액은 전달보다 28조원 늘어난 750조565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말과 비교하면 7개월 만에 60조원이나 급증했다. 한국은행이 연 2.25%인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연 2.75~3% 수준으로 인상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앞으로도 요구불예금에서 예·적금으로 갈아타는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저원가성 예금의 이탈로 금리 경쟁이 벌어지면서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말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3.4%(상위 3개 은행 기준)까지 뛰었다. 인터넷전문은행(연 2.5~3%)보다 높고 2금융권인 저축은행(연 3.42%)과 비교해도 차이가 거의 없다.
은행으로선 고금리 정기예금이 늘어날수록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은행의 조달 비용이 증가하면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주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오른다. 코픽스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으로 가계대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은행권 자금 경색 우려은행들은 저원가성 예금 이탈로 부족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대부분 1년 미만의 단기 상품 중심인 예·적금을 중장기 기업대출 재원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최근 금리 상승으로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은행 대출을 더 늘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은행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7조680억원으로 지난해 10월(9조1500억원) 이후 가장 많았다. 5월(3조7040억원), 6월(2조250억원)과 비교해도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발행액(24조7100억원)도 최근 1년 새 가장 컸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기준금리가 더 오를 경우 은행채 금리도 상승해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은행채 발행을 통해 미리 대출자금 등을 확보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은행 예·적금과 은행채에 시중자금이 과도하게 몰리면 2금융과 기업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은행 조달 비용이 상승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비은행의 조달 비용이 오르고 금융회사는 대출을 회수하는 등 신용 경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기업대출이 늘어나면 가계대출 여력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