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던 옥수수·소맥 등 곡물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서 올 하반기부터 음식료 업종의 실적 개선세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가 상승을 이유로 지난해부터 식음료 업체 대부분이 판매가격 인상에 나선 상황에서 곡물가가 하향 안정화하기 시작하면 이윤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하반기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둔화 우려로 주가가 지지부진한 지금이 오히려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4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소맥 9월물 선물 가격은 부셸 당 7달러82센트를 기록했다. 지난 3월 최고점(14달러25센트) 대비 약 45% 급락한 상태다. 옥수수 가격도 지난 4월말 고점(부셸 당 6달러2센트) 대비 약 26% 하락했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 우려로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중국 등 신흥국의 경기 부진 우려로 인해 곡물가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곡물 가격은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작황이 비교적 안정적인데다 대두, 옥수수 등 곡물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사료 수요도 둔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단됐던 흑해 항로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도 5개월 만에 재개됐다. 국제 유가도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심 연구원은 "올 상반기 곡물가가 치솟았던 이유는 수급 불균형에 있었던 게 아니라 전쟁 등으로 인한 심리적 요인이 컸던만큼 향후 곡물가가 추가로 급등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곡물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이르면 올 4분기부터 음식료 업체들의 본격적인 실적 개선세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곡물 가격 상승→판매가 인상→곡물 가격 하락→이윤 확대’라는 사이클을 통해서다. 하나증권은 국내 식음료 업체들의 곡물 수입 단가는 3분기 정점을 형성한 뒤 4분기부터 하락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식음료 대부분 업체가 원재료 가격 급등을 이유로 판매 가격을 일제히 인상한만큼 올 하반기부터 곡물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내년 이익 마진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8월엔 오뚜기와 농심, 삼양식품이 주요 라면 가격을 각각 11.9%, 6.8%, 6.9%씩 올렸다. 지난 12월엔 롯데칠성음료가 칠성사이다 등의 가격을 6.8%, 지난 2월엔 CJ제일제당이 죽, 두부 등의 가격을 7~10% 인상했다.
경기 둔화, 실적 피크아웃(고점 찍고 하락) 등의 우려로 인해 최근 식음료 업종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올 하반기나 내년부터 '10여년만의 음식료 강세장’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차재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경기방어적 성격이 강한 음식료 기업은 침체 국면에서도 큰 매출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음식료주가 코스피 지수를 크게 이겼던 것처럼 10년 주기로 나타났던 음식료 업종의 강한 반등세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나증권은 옥수수 등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CJ제일제당과 대상, 원가 부담으로 인한 실적 저하 우려가 과도하게 반영된 농심 등을 추천했다. 심 연구원은 "소재 사업부문이 원가 하락의 수혜를 많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롯데칠성과 CJ프레시웨이를 탑픽으로 꼽았다. 오지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칠성은 높은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가격 인상을 추가로 단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