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책X책'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 저자·출판사 등은 달라도 곁들여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합니다.
'한국 문단의 거장' 김훈과 이문열이 똑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각각 썼다. 안중근에 대한 소설 <하얼빈>과 <불멸> 이야기다. 두 사람 같은 대가가 동일한 소재를 택하는 일은 흔치 않다.
안중근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였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역사 교과서에서 접했다. 하지만 '안중근이란 어떤 인간인가' 하는 질문에 한 마디로 답하기는 힘들다. 독립운동가이자 천주교 신자였고 한때 의병의 일원이었던, 세 아이의 아버지, 포수, 청년…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어서일까. '문장의 대가'로 꼽히는 두 작가는 소설을 통해 안중근을 되살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김훈의 <하얼빈>은 지난 3일, 이문열의 <불멸>(1·2권)은 그보다 10여년 앞선 2010년 출간됐다. <불멸>은 올해 5월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개정 출간되면서 <죽어 천년을 살리라>로 제목이 바뀌었다.김훈의 '인간 안중근', 이문열의 '외곬 안중근'두 소설 속 안중근은 전혀 다르다.
<하얼빈>은 안중근을 고뇌하는 청년으로 묘사했다. 김훈의 전작 <칼의 노래>가 영웅 이순신보다 인간 이순신의 불안을 직시했듯이, 안중근이라는 한 인간의 소용돌이치는 내면에 집중했다.
김훈은 최근 <하얼빈>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청춘과 그 내면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반면 <불멸>은 대의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져 불멸의 존재가 된 투사 안중근을 그려냈다. 개정판 제목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소설의 주제 의식을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2010년 출간때 이문열은 "안중근의 삶은 겨레에 대한 사랑에서 점차 자라난 인간애와 그 실천을 향한 외곬의 정진 말고는 잡티가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그의 삶에 빠져 있다가 나오면서 느낀 건 '인간적'이라는 말로 이분을 설명하긴 어렵겠다는 것"이라며 "안 의사가 죽기 전에 남긴 400매 분량의 자전적 기록에도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10줄에 불과할 정도로 인간적인 면모나 사생활, 현실에서의 일탈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신에 소설은 '왜 안중근이 의거에 나서게 됐는가'를 긴 생애를 통해 점차 구체화한다.<하얼빈>과 <불멸> 의거 장면은 정반대두 소설의 각기 다른 접근법은 의거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이토를 향해 총을 쏜 직후 환호하지 않는다. 불안에 떤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이토를 향해 곧장 뻗어나간 총알과 달리 청년 안중근의 마음은 끝없이 흔들린다.
체포 이후 안중근은 이토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두렵다. "이토가 죽지 않고 병원으로 실려가서 살아났다면, 이토의 세상은 더욱 사나워지겠구나. 이토가 죽지 않았다면 이토를 쏜 이유에 대해서 이토에게 말할 자리가 있을까. 세 발은 정확히 들어갔는데, 이토는 죽었는가. 살아나는 중인가. 죽어가는 중인가."
<죽어 천년을 살리라> 속 1909년 10월 26일의 안중근은 불안 아닌 분노에 휩싸여 있다. 이토를 맞이하는 러시아 의장대의 요란한 환영 행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어째서 세상일이 이리 공평하지 못한가. 이웃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치는 자는 이같이 날뛰고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대신, 어질고 약한 죄 없는 인종은 어찌하여 이처럼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
총성 이후의 묘사도 극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장대 소리에 총성이 묻힌 덕에 안중근은 시간을 번다. "안중근이 처음 쏜 세 발의 총성은 워낙 힘차고 흥겨운 군악 소리에 묻혀 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폭죽 소리 같은 것으로 무심코 지나쳐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이어 네 발의 총성이 더 들리자 하얼빈 역두는 이내 불길한 느낌으로 그 소리를 알아들었고, 이어 사람이 풀썩풀썩 쓰러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부근의 환영 인파도 사태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영화로 친다면 <하얼빈>은 의거 장면에서 총성 외 모든 소리를 묵음 처리하고, <죽어 천년은 살리라>는 군악 소리를 극대화해 표현한 셈이다. <하얼빈>에는 왜 '단지동맹' 장면이 없을까
'안중근' 하면 떠오르는 '끝이 잘린 왼손 네 번째 손가락' 이야기가 <하얼빈>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김훈은 "소설에서 안중근 형성기는 완전히 빠져 있다. '단지동맹' 같은 사건도 다루지 않았다. 안중근의 의병투쟁은 소략하게 다루고 있다. 의병투쟁에서 의혈투쟁으로 전환하는 대목에서 소설은 시작된다"고 했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단지동맹' 장면을 담고 있다. 안중근의 열여섯 살 청년 시절부터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안중근은 의병 동료 열한 명을 모아놓고 말한다. "오늘 내가 여러 동지들을 모신 것은 시급히 서둘러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우리는 그동안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나 소리만 요란할 뿐 앞뒤로 아무 일도 이룬 바 없으니 남의 비웃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다시 무엇을 꾀하고자 해도 특별한 단체가 없으면 그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외다. 이에 오늘 동지들에게 먼저 그 단체부터 만들 것을 제안하오.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하늘에 맹서하고 그 듯을 적은 다음, 한마음으로 단체를 만들어 이 한목숨 나라에 바칠 각오로 기어이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애써 보는 게 어떻소?" 이 각오의 상징이 단지(斷指)다.
두 소설은 내용뿐 아니라 분량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얼빈>은 308쪽,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1·2권을 합쳐 864쪽 분량이다. 다만 당초 계획대로였으면 <하얼빈>도 두 권의 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훈은 "젊은 시절부터 생각한 소설이지만 방치했었다"며 "지난해 아팠다가 몸을 추스르고난 뒤 올해 초부터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극도로 압축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영웅'으로 박제돼있던 안중근을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되살려 냈다는 점은 두 소설의 공통적인 성취다. 방대한 기록을 치열하게 취재한 흔적을 소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은 자신만의 문장으로 복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