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금기어’였던 원전 신설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내에서 원전 신설을 주장하는 의원들로 구성한 ‘최신형 원자력 재건축 추진 의원 연맹’이 지난 4일 일본 국회에서 긴급 총회를 열었다고 5일 보도했다. 이나다 도모미 의원 연맹 회장(자민당 정조회장)은 “탈석탄사회 실현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정부의 자문회의에서 원전 신설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원전 신설, 탈석탄 방안으로 명시”
작년 4월 출범한 원자력 재건축 추진 의원 연맹은 원전 신증설과 노후 원전의 재건축을 주장하는 자민당 의원 6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 선거 유세 중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마리 아키라 전 경제산업상 등 자민당 실세들이 고문으로 참여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지난달 27일 탈석탄사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정부의 첫 자문회의에서 “원전 재가동과 그 이후의 전개 방안 등 정치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항목을 명확히 짚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원자력 재건축 의원 연맹은 재가동 이후의 전개 방안에 원전 신증설과 노후원전 재건축을 명시하도록 힘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일본 정부도 원전 신증설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29일 전문가 회의에서 “다양한 차세대 원자로 모델 가운데 기존 원전 기술을 활용하는 신형 원전 개발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원전을 신설하겠다는 의미다. 이르면 2030년부터 신형 원전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원전 줄이자 전력 부족·무역 적자그동안 일본 정부는 원자력발전에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원전의 신설과 증설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해왔다. 대신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된 원전을 재가동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56기에 달하던 원전 가동을 전면 중지하고 안전성 심사와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은 7기만 재가동하고 있다. 전체 전력의 30%에 달하던 원전 비중은 6%로 줄었다. 원전 비중을 대폭 줄인 뒤 일본은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화력발전 의존도는 75%까지 치솟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안전보장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만성 전력 부족이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자 원전에 부정적이던 여론이 바뀌고 있다는 게 일본 정부와 자민당의 판단이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줄여 탈석탄사회를 실현한다는 일본 정부의 목표도 더 이상 원전 신증설 논의를 미룰 수 없도록 압박하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내놓은 ‘그린 성장전략’을 통해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60% 수준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온실가스를 0로 줄이려면 2050년에도 원전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현재 6%까지 떨어진 원전 비중을 2030년 20~22%로 회복시키기로 했다. 원자력발전 비중을 30% 수준까지 높이려면 원전을 30기 정도 돌려야 한다. 하지만 가동 가능한 원전을 모두 원전 수명인 60년씩 돌려도 2050년이면 20기만 남고, 2070년이면 0가 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