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이 지난해 말 롯데그룹 역사상 첫 외부 출신 대표이사 부회장을 영입한 지 두 분기 만에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외부 수혈을 통해 ‘1등 DNA’를 일깨우려 한 신동빈 롯데 회장의 한 수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유통업계에서 나온다. 쇼핑·컬처웍스가 ‘효자’
롯데쇼핑은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조9019억원과 744억원으로 집계됐다고 5일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3조9025억원)와 거의 같은 수준이고, 영업이익은 작년 2분기(76억원)보다 9.7배 불어났다. 이는 실적 발표 전 컨센서스(증권가 추정치 평균·585억원)보다 27% 늘어난 금액이다.
11개 계열사 중 ‘맏형’인 백화점의 반등이 주효했다. 2분기 영업이익이 1042억원으로 68.5% 늘었다.
지난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롯데마트는 영업적자를 작년 2분기 264억원에서 올 2분기 71억원으로 대폭 줄였다. 제타플렉스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체험형 공간을 마련한 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힘입어 흑자 전환(105억원)했다”고 설명했다.
2분기 호실적의 영향으로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롯데쇼핑은 1300원(1.36%) 오른 9만6800원에 장을 마쳤다. 롯데쇼핑은 지난달 15일 장중 8만6500원을 찍고 반등한 이후 11.90% 상승했다. 외부 출신 CEO들의 힘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등의 영향으로 대면 쇼핑이 활성화된 게 롯데쇼핑 반등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 백화점은 사상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황이 좋다”며 “롯데뿐 아니라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2분기 실적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때맞춰 등장한 새 ‘조타수’들도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유통 부문 총괄부회장과 핵심 계열사인 백화점 부문 수장을 외부 출신으로 바꿨다.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영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상현 롯데 유통군(HQ) 총괄대표(부회장)는 P&G에서 한국 대표,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미국 신규사업 부사장 등을 지냈다. 2018년 롯데에 영입되기 전까진 DFI리테일그룹의 동남아시아 유통총괄대표 등을 맡았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사장은 ‘맞수’인 신세계백화점 출신이다. 롯데컬처웍스는 CJ CGV 출신인 최병환 대표를 영입했다. 롯데 관계자는 “컬처웍스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작년 상반기까지 방어적 경영을 했으나 최 대표 주도로 리오프닝 직전 공격적 경영으로 빠르게 전환한 게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체질 개선 이어갈까유통업계에선 롯데의 외부 출신 CEO들이 지속해서 체질 개선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신 회장은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VCM(사장단회의)에서도 1등 DNA의 부활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상현 부회장은 취임 이후 약 6개월간 전국 매장을 돌며 경직된 조직 문화를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로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롯데쇼핑이 계열사 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을 보인다. 백화점, 마트, 편의점, 홈쇼핑, 가전양판점, 슈퍼마켓, e커머스 등 유통업 전 분야는 물론 영화, 패션까지 아우르는 곳은 롯데쇼핑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리빙 분야 1위인 한샘과는 전략적 제휴 관계다. 롯데지주가 한샘 최대 주주인 IMM프라이빗에쿼티가 조성한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잘 꿰기만 하면 보배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며 “P&G라는 글로벌 기업에서 역량을 쌓은 김상현 부회장이 유통 계열사 간 시너지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