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GP커밋 대출 시장, 자산운용사도 뛰어든다

입력 2022-08-05 08:38
이 기사는 08월 05일 08:3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수천억에서 수조원 규모의 돈을 굴리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핵심 운용역들은 펀드조성을 앞둘 때마다 여기저기서 현금 '영끌' 확보를 위해 분주하다. PEF 전체 규모의 약 2%가량을 운용사에서 마련해야하는 '운용사 의무 출자금(GP커밋)'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도 수조원에 달하는 펀드들이 속속들이 조성되면서 열명 남짓의 핵심 운용역들이 GP커밋 수수료만으로 수백억원을 투입해야하는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개인 자산으로 이를 마련하기 어렵다보니 재원을 대출해주는 시장도 형성 중이다. 그동안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들이 고금리로 대출을 제공해왔지만, 자산운용사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PEF와 네트워킹을 쌓으면서 연관 업무를 챙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계열의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최근 PEF운용사의 의무출자금 대출을 위한 대출펀드 조성을 위해 주요 PEF 관계자를 대상으로 수요조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계열 우리자산운용이 자산운용사 중 최초로 대출펀드상품을 내놓은 이후 두 번째다.

GP커밋은 PEF 조성시 운용사가 일정부분 맡아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제도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펀드 규모의 2% 가량을 운용사가 담당하는 게 관례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 318개의 기관전용 사모펀드가 신설됐고, 펀드 자금모집액은 232조4000억원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만 약 4조원의 신규 대출 수요가 있는 셈이다.

국내 PEF 제도 도입 초창기엔 운용사 대표와 소수 파트너들이 사재를 투입해 GP커밋을 모아 운용사를 설립해왔다. 이후 PEF시장이 성숙하면서 단일 펀드규모가 수천억~수조원 규모까지 커진데다 신규 펀드설립도 매년 늘면서 이를 운용역 개인 차원에서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왔다. 예를들어 MBK파트너스 5호 바이아웃펀드의 경우 펀드규모만 8조원에 달하다보니 수십명 수준의 운용역을 보유한 운용사가 1600억원(2% 기준)을 마련해야하는 구조다.

최근까지 시중 은행 등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PEF운용사를 대상으로한 상품을 취급하지 않아 급전이 필요할 경우 캐피탈사 혹은 저축은행의 일부 지점을 통해서만 대출을 받아왔다. 저금리 상황에서도 대출이자로 7%에서 10%까지 감수해야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 내 담보로 제공할 유형자산은 없지만 매년 펀드 전체 규모의 1.5~2%씩을 관리보수로 받기 때문에 출자자들의 신용만 확실하면 PEF만한 안전자산이 없다"이라며 "당장 현금이 말라서 정말 자금마련이 시급한 대표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강남 일대 저축은행에서 고금리에 대출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우리자산운용이 1호 펀드(우리글로벌GP커밋먼트론 전문투자형 사모 투자 신탁) 펀드가 출시되면서 각 운용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해당 펀드를 통해 4%대 금리로 운용사들에 대출이 이뤄지면서 향후 해당 운용사가 진행하는 M&A에 인수금융을 제공하거나 자문업무 등을 맡는 네트워크 효과도 꾀했다. 400억 규모 1호펀드가 수개월만에 소진되면서 같은 해 9월 250억규모 2호펀드도 출시했다. 현재 우리자산운용 내에선 2호펀드도 대부분 소진해 새 펀드 조성을 검토 중이다. 미래에셋 등 후발주자들도 이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시장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수요도 꾸준히 늘 것으로 점쳐진다. 국내에서도 주요 PEF운용사들은 창업자 및 소수의 파트너들 뿐 아니라 직접 실무를 담당하는 운용역들에게도 GP커밋의 일정부분을 투자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관행이 번지고 있다. MBK파트너스 등 국내 대형 PEF들은 담당한 거래엔 운용역들이 의무적으로 개인 자산을 투자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자신의 자산을 직접 투입하면서 출자자들과 이해관계를 일치해 책임을 강화하는 효과를 꾀하기 위해서다. 또 국내에서도 대부분 성공적으로 청산한 펀드들이 연 복리(IRR) 기준 두자릿 수 이상 수익률을 올려왔다보니 운용역 개인에 떨어지는 관리보수와 성과보수 외에도 쏠쏠한 재테크원으로 활용됐다.



GP커밋 비중이 커질 수록 LP들이 해당 운용사를 선호하는 현상도 관측된다. 2020년 KED글로벌이 국민연금 등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6%가 우수한 운용사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GP커밋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PEF 제도가 자리잡은 미국에선 운용사 내 직원들의 GP커밋을 주선하는 부서를 별도로 두는 등 성과평가와 조직관리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KKR의 경우 JP모건과 제휴해 운용역들이 부담해야하는 GP커밋의 절반 정도를 회사가 대출받아 2%대 낮은 금리로 제공해왔다. KKR은 통상적인 관례인 2%를 훌쩍 넘는 전체 펀드의 10%가량을 GP커밋과 자기자본투자등을 통해 담당해 펀드가 올린 성과를 임직원들에 더 크게 나눠주는 문화도 형성돼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LP입장에선 GP들이 펀드에 자기자산을 더 많이 넣는 것 만큼 더 큰 동기부여 수단이 없다보니 이 비중이 클수록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