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전역에 탄약 비축분이 부족해서 전쟁이 나면 8일 만에 끝장날 겁니다.”
폴란드가 최근 한국 무기를 대량 수입하기로 결정한 뒤 독일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독일의 무기 이전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 4월 “폴란드 정부가 우리 대신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보내주면 폴란드의 전력 공백을 독일산 전차로 채워주겠다”며 우회 지원을 공언했다. 하지만 폴란드 국방장관은 “독일이 약속과 달리 레오파드-2A4 전차를 20대만 제공했다”며 “심지어 그조차도 수리하는 데만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사용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실은 독일 연방정부가 나눠줄 전차가 많지 않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 군사 약소국이 됐다는 자조론이 나오고 있다. 탄약 부족, 장비 노후화 등 독일 국방력 자체가 문제여서 동맹국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지난 3월 국방 예산을 1000억유로(약 133조원) 늘리겠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세계 최강 전차군단’을 자랑하던 독일은 폴란드 외 다른 지역에서도 망신을 당하고 있다. 독일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현지 매체 FAZ에 “약속한 지 3개월가량이 지났지만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전차를 수송하는 계획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그동안 방산 지출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조차 2016년 독일을 겨냥해 “미국의 안전보장망을 악용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라고 할 정도였다.
현재 독일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독일 싱크탱크 If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군 전차는 지난 30년간 6779대에서 806대로, 전투기와 헬기는 1337대에서 345대로 대폭 줄었다. 독일 의회 국방위원회에 제출된 최근 보고서에는 “리투아니아 동맹군이 ‘독일군의 무선장비 시스템이 뒤처졌다’며 놀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적었다. 이 보고서는 “독일 연방군은 ‘동맹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전락했다”고 덧붙였다.
독일 대표 방산업체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퍼가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독일마셜펀드의 헤더 콘리 회장은 “1000억유로 국방비 증액 결정은 NATO의 동쪽과 독일 영토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과 비교하면 ‘초기 계약금’에 불과한 규모”라고 꼬집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