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울시 기재부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잠실주공5단지

입력 2022-08-03 17:22
수정 2022-08-04 00:19
“학교 부지 문제에 기획재정부와 시교육청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 계획안 심의에 참여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한 외부위원은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7년여간 중단됐던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은 지난 2월 도계위를 통과하면서 순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국유지인 신천초 부지의 교환을 거부하고 공사를 불허하면서 사실상 중단 위기에 내몰렸다. 신천초가 건물은 시교육청, 부지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국유지에는 국가 시설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시설인 학교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국유지 위치를 옮기는 부지 교환은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다.

학교 부지 교환을 전제로 허가를 내준 서울시와 도계위 위원들은 난데없는 복병에 난감한 표정이다. 문제가 불거진 뒤 서울시는 “부지가 교환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한 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주공5단지의 한 조합원은 “학교를 옮기지 말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고 교육청이 학교환경영향 평가도 마쳤다”며 “공사를 시작하면 휴교하기 때문에 안전상 위험이 없는데 착공을 왜 막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지방자치제 도입 후 교육청으로 이관됐어야 할 신천초 땅이 왜 국유지로 남았는지를 공무원과 학자들에게 수소문했지만 연유를 아는 이가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1950~1960년대 설립된 공립 학교 땅은 누락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신천초 사례처럼 지자체와 국가 시설 소유권자 불일치로 그동안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고 해법을 찾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교육청을 상대로 ‘국유지를 무단 점유했다’며 점용료를 부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국유지라는 이유로 학교 시설물 증·개축을 불허해 노후 학교의 안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정부의 ‘부실 행정’ 탓에 3900여 가구의 주민들이 20여 년간 노력해 간신히 궤도에 오른 재건축 사업은 또다시 표류 위기에 처했다. 재산상 손실은 물론 추가로 지어지는 약 3000가구의 공급 시기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기재부와 서울시가 서로 ‘법대로’만 외치며 다투다가 끝내 합의에 실패한다면 보신주의 행정으로 주민에게 피해를 남긴 대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