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길이 최대 4.5cm 가량의 양서류.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맹꽁이(사진)’가 발견돼 산업기반시설 공사 사업이 차질을 빚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공사 중 맹꽁이가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업체는 야생동물 보호법에 따라 대체 서식지를 만들어 ‘이주 작전’을 벌여야 한다.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맹꽁이가 첫 삽을 뜨니 나타나 공사를 멈췄거나, 맹꽁이 보호 여부를 두고 주민 및 환경단체와 지자체 등이 갈등을 빚는 양상도 잇따르고 있다. LH·GH공사, 맹꽁이 보고 ‘화들짝’2일 경기주택도시공사(GH)에 따르면 광명·시흥테크노밸리 사업장에서 지난 6월말 지장물(불필요한 공작물, 농작물) 철거 작업 중에 맹꽁이가 발견됐다. 이 사업은 GH가 경기 광명시 가학동, 시흥시 논곡동 일대 49만2000㎡의 부지에 4000억원을 들여 조성키로 한 산업단지 프로젝트. GH는 최근 사업 추진에 따른 맹꽁이 서식처 훼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억3000억원 규모의 ‘포획 및 이주 모니터링 용역’을 긴급히 발주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14조와 73조에 따르면 멸종위기 종의 포획 채취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포획 사실이 확인되면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종종 산단 조성사업을 벌이는 GH, LH공사는 환경부 지침에 따라 용역을 벌여 대체 서식지를 만들고, 포획 및 이주 작업을 마친 뒤에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 GH 관계자는 “공사지 주변에 맹꽁이가 살 수 있는 수심 50cm 안팎의 웅덩이를 조성할 예정”이라며 “조성 공사의 본격적 착공이 내년 5월에 예정돼 시간적 여유는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한류 확산을 위한 영상콘텐츠 제작단지(스튜디오)를 개발하는 인천 청라국제도시 5-4블럭(18만㎡)사업(사진)도 같은 이유로 차질을 빚을 조짐이다. 인근 6지구(45만㎡)에서 맹꽁이를 비롯해 역시 멸종위기 Ⅱ급인 금개구리가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업 주체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LH는 최근 청라국제도시의 법정 보호종 포획과 이주를 위한 용역을 긴급히 발주했다.
개발을 위해 터를 다지고 땅을 파는 LH·GH공사와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맹꽁이’는 공공연한 골칫거리다. 2020년에는 영종도와 청라국제도시를 잇는 제 3연륙교가 지어지는 청라 로봇랜드 부근에서 맹꽁이가 발견돼 인천시가 급히 ‘맹꽁이 대이주’를 펼친 적이 있다. 최근 인천 연수구 송도테마파크 예정지에서도 맹꽁이가 발견돼 공사가 ‘올스톱’ 됐고, 제주2공항 사업은 환경부가 맹꽁이 발견을 이유로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서류를 반려해 백지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경단체나 주민, 사업자간 갈등이 맹꽁이 소송으로 비화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성남시 서현동 일대에 공공주택지구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맹꽁이 서식’을 이유로 지구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고, 1심서는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에서 신도시 개발 지구로 선정된 태릉에서도 주민들이 법정보호종 6종 발견을 이유로 개발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인천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맹꽁이가 나오면 수 개월 공사를 멈추는데, 금전적 손해는 차치하고라도 수분양자는 입주가 늦어지고, 현장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는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유독 공공주택 건설사업 등에서만 보호종 발견을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것도 살펴볼 문제”라고 비판했다. 환경론 VS 개발론 첨예한 대립맹꽁이는 2005년 멸종위기Ⅱ급으로 지정된 이후 3차례 갱신 절차를 거쳤지만, 여전히 굳건한 ‘지위(?)’를 지키고 있다. 맹꽁이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주로 서해안 일대에서 자주 되는데, 갯벌 매립지가 많은 이곳엔 인공하천이 조성돼 있고, 지대도 낮아 맹꽁이가 서식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원형지가 아닌 매립지에서 발견된 맹꽁이도 보호를 해야하나’는 논란이 나오지만 똑같이 보호 대상이다.
한 생태 전문가는 "맹꽁이가 발견되기 좋은 매립지, 서해안 저지대는 평지이고, 흙으로 조성돼 사람이 개발하기도 좋다는 특징이 있다"며 "사람들이 공사장에서 맹꽁이가 자주 발견된다고 느끼는 이유”고 설명했다. 맹꽁이는 장마철에 간헐적으로 조성된 습지에서 산란하고, 가을부터 이듬해 초여름까지 땅속에서 생활하는 습성 탓에 평소엔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따르면 맹꽁이는 거제도, 진도 등을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센터는 주기적으로 자주 출몰하는 지역의 개체 수를 측정하고 분포지역을 파악한다. 정확한 개체 수에 대한 근거는 없는 셈이다. 2011년 환경부는 맹꽁이 등 18종의 동식물을 검토를 거쳐 법정보호종 해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해제후보종’으로 지정했다가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올해 멸종위기종을 갱신하는 공청회에서도 맹꽁이를 보호종 Ⅱ급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맹꽁이는 학교, 아파트 수로, 심지어는 하수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터파기 도중에 발견되는 '유물'에 긴장하는 건설업체들 사이에서 '이젠 맹꽁이가 더 걱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환경단체의 반발앞에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소속의 민미숙 서울대 교수는 "'개발'아니면 '파괴'라는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해결책이 별로 없는 건 맞다"면서도 "주변에 최대한 원형과 가까운 서식지를 마련해주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보존을 위한 노력을 다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용수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정보팀장은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맹꽁이 분포지역은 5년 전에 비해 소폭이지만 줄고 있다"며 "재개발에 반대하는 사람은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할 수 있지만, 맹꽁이는 스스로 대변할 수 없기에 인간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수원=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