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관료나 정치인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금융 관련 협회장과 공공기관 수장에 최근 민간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기용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조직을 축소하고 가급적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운 게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아직까지 새 정부의 금융권 인사 기조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아 이 같은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신협회·신보 인선에 쏠린 관심1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신금융협회는 김주현 전 회장의 금융위원장 임명으로 공석이 된 차기 회장 모집공고를 오는 5일 내고 본격적인 인선 절차에 들어간다. 앞서 지난달 차기 이사장 공모를 시작한 신용보증기금도 최근 후보 면접을 마치고 최종 후보군을 금융위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기관장 인선에선 민관 대결 구도가 이뤄진 모습이다. 여신금융협회에선 남병호 전 KT캐피탈 대표, 정완규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 위성백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 전직 관료들과 서준희 전 비씨카드 대표, 정원재 전 우리카드 대표, 박지우 전 KB캐피탈 대표 등 민간 출신 후보들이 맞대결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신보에선 최원목 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과 권장섭 전 신보 전무 등이 최종 후보군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 임명이 이번에도 실현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달 27일 취임한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1976년 수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공채 출신 수장이 됐다. 기재부 2차관 출신인 방문규 전 행장(현 국무조정실장)을 포함해 21명(윤 행장 제외)의 역대 행장 가운데 15명(71.4%)이 경제관료 출신일 정도로 수은 행장은 ‘모피아(재무부+마피아)’의 전유물로 통했다.
지난 1월 취임한 권남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도 ‘첫 내부 출신 CEO’ 타이틀을 갖고 있다. 캠코가 2000년 성업공사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이후 처음이다. 2월 임기를 시작한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전 하나저축은행 대표) 역시 선거에서 관료 출신을 제치고 처음으로 업계 출신 중앙회장에 올랐다. 지금까지 곽후섭·이순우 전 회장 등 민간인 출신은 있었지만 저축은행업계에서 곧바로 협회장이 된 건 오 회장이 유일하다. 갈수록 떨어지는 ‘관 출신’ 프리미엄국민들이 인사나 채용을 둘러싼 불공정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내부 직원들의 여론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가 된 만큼 ‘관 출신’ 프리미엄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대가 바뀌어 선배 관료가 현직 후배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져 전문성과 업계 이해도가 높은 내부·민간 출신에 대한 선호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예전과 달리 이번 정부에선 낙하산 인사 수요 자체가 많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非)정치인 출신이어서 소위 ‘챙겨줄 사람’이 많지 않고, 시장 자율 원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했던 점을 고려할 때 ‘MB맨’이 적지 않은 현 정부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광경이 나타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폐지와 인사 검증 권한의 법무부 이관 등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금융권 인사 방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