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집중탐구
2015년 자사주 매입 후 시작된 '삼성전자 독주'
현 상황 2015년과 비슷…하반기 주주환원에 관심
시장선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에 무게
금산분리 완화 기조도 자사주 매입에 우호적
'10만전자'를 꿈꿨던 삼성전자가 6만원대에 머물면서 속앓이하는 주주가 적지 않습니다. 당장 반도체 업황 반등이 어려워 보이는 점도 문제입니다. 다만 증권가에선 하반기 주주환원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통 큰 주주환원에 나설 경우 당장 주주가치가 오를 뿐 아니라 반도체 업황 반등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왜 지금 삼성전자에 주주환원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또 주주환원 기대감은 현실 가능성이 있는 걸까요? 주주환원을 중심으로 삼성전자를 분석해 봤습니다. 2016년 삼성전자 독주, 그 시작은 자사주 매입시계는 2015년으로 돌아갑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주가 역시 110만~120만원(액면분할 전) 수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상황을 반전시킨 건 대규모 자사주 매입 소식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 29일 11조3000억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겠다고 밝힙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경영 전선에 막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과거와 선을 긋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봤습니다. 2015년 9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가 막 마무리된 시점이기도 하고요.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당장 삼성전자 주가 하방을 받칩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16년 1분기부터 실적이 전망치를 웃돌기 시작하더니 2017년 반도체 슈퍼호황을 맞이합니다. 맏형이 가니 펀드매니저들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2015년 하반기만 하더라도 오뚜기나 아모레퍼시픽 등 중소형 소비재 주가가 좋았기에 펀드매니저들은 해당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50만원 내외이던 오뚜기 주가가 약 반년 만에 3배가 올랐으니까요.
그런데 시가총액 1위이자 시장 그 자체인 삼성전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펀드매니저들은 삼성전자를 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삼성전자가 벤치마크(코스피 지수)를 끌어 올리는데 삼성전자를 담지 않았다가는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이 엉망이 될 테니까요. 그러자 삼성전자에만 수급이 쏠리기 시작합니다. 2016년~2017년 삼성전자 혼자 다른 종목을 짓밟고 독주하는 일이 벌어진 배경입니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300만원에 육박해 '한 달 월급을 쏟아야 삼성전자 주식을 겨우 한 주 살 수 있다'고들 말했었죠. 2015년과 비슷한 2022년지금 삼성전자를 둘러싼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는 시각이 나옵니다. 반도체 업황 둔화 전망에 주가는 6만원 초반대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지난 1분기를 정점으로 올해 내내 꺾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쉬는 동안 각종 테마로 엮인 중소형주의 수익률이 높았습니다. 코스피 지수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초 25%대에서 현재 18.9%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은 올 하반기 삼성전자가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8·15 광복절에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높아진 데 따른 겁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이미 형기가 만료됐기에 특별사면(형 집행 면제)은 필요 없지만, 경영으로 복귀하려면 사면법상 복권(형 선고의 효력으로 인해 상실 혹은 정지된 자격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증권가에선 이 부회장이 복권될 경우 신규 경영계획이 도출되며 주주환원책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립니다. 자사주 매입이 강력한 후보
금산분리 완화 기조도 우호적주주환원책의 유력한 수단으론 자사주 매입이 떠오릅니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자사주 매입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삼성전자의 현재 외국인 비중은 49.82%에 달하는데, 배당을 줄 경우 이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 가져가면서 외환 시장이 출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나라가 강달러로 힘든데 삼성전자가 이를 부추기는 꼴이 된단 겁니다.
금산분리 완화에 우호적인 정부의 분위기도 자사주 매입·소각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아래 사진)은 취임 전부터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금융회사는 다른 회사 지분을 15% 이상 가질 수 없습니다. 또 금융회사가 신규로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게 되면 금융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가진 삼성전자의 지분은 딱 10%입니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높이므로 여기서 자사주 매입·소각을 추가로 하게 되면 금융위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과거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금산분리 원칙에 부딪히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1조원어치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매각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다만 당시는 국정농단 사태로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내외 시선이 따가웠던 시절이라 삼성전자는 금융회사 지분 상승에 대한 금융위 사전 승인을 신청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아질 정도로 따가운 시선이 많이 거둬진 데다, 금융위도 금산분리 완화에 적극적인 상황입니다. 당장 삼성전자가 해야 할 일은 금융위에 사전승인을 신청하는 것밖엔 없습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단 겁니다. "자사주 매입이 반도체 업황 빨리 돌릴 수도"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이 의미하는 바는 또 있습니다. 반도체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우회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설비투자에 13조3640억원을 썼습니다. 만약 삼성전자가 지난번과 비슷한 규모(약 11조원)로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SK하이닉스의 한 해 투자금액이 모두 자사주 매입으로 소진되는 셈입니다. '더 이상의 설비투자는 없겠구나'라는 인식이 반도체 공급 부담을 낮추면서 업황 반등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하반기 '통 큰 주주환원'에 나선다면 시장 분위기기는 급변할 수 있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기관투자자들은 올해 내내(1일 기준) 삼성전자 주식만 6조9766억원어치 팔아치웠습니다. 한 펀드매니저는 "포트폴리오에서 삼성전자를 비워뒀던 펀드매니저들이 삼성전자 주가 상승으로 부랴부랴 담기 시작하면 삼성전자가 독주했던 2016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의 데자뷔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지켜볼 만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