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준공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수유팰리스’는 올 3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청약 신청을 받았지만 전체 가구(216가구)의 82%인 178가구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다. 연이은 무순위 청약에도 물량을 소진하지 못하자 분양가를 15% 낮췄지만 계약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우려가 확산하면서 지방은 물론 ‘불패 행진’을 이어가던 수도권 분양시장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분양가가 많이 올랐고, 대출 규제와 금리 추가 인상 우려까지 있어 분양시장도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분양 나선 3곳 중 1곳 미분양
29일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지난 27일까지 전국에서 1·2순위 청약을 진행한 211개 아파트 중 1개 주택형이라도 미달이 발생한 곳은 63곳으로 집계됐다. 전체 분양 아파트의 29.9%에서 미분양 물량이 나온 것이다.
특히 경기도는 올 들어 분양한 57개 아파트 중 21.1%인 12곳이 모집 가구 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난해 102개 분양 아파트 중 단 두 곳에서만 미분양이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실제 계약과 별개로 올 들어 서울과 인천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1·2순위 청약 미달까지 나오고 있다. 28일 청약 접수를 마감한 인천 동구 송림동 ‘인천두산위브더센트럴’이 1순위 청약에서 일부 미달되면서 미분양 공포가 확산할 조짐이다. 인천두산위브더센트럴 1순위 당해 지역 청약에는 487가구 모집에 절반이 넘는 266가구가 미달됐다. 84㎡A, 84㎡B를 제외한 5개 주택형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분양시장에 냉기가 확산하면서 ‘무순위 청약’ 물량도 늘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투데이 집계 결과 상반기 수도권에서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물량은 2788가구로, 작년 상반기(1396가구)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청약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던 작년 상반기만 해도 간혹 무순위 청약 물량이 나오면 경쟁률이 수만 대 1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급랭했다. 올 3월 분양에 나선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는 수차례 진행한 무순위 청약에도 모집 가구 수를 다 채우지 못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칸타빌수유팰리스처럼 입주가 시작되고도 분양이 안 돼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서울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5월 37가구에서 지난달 215가구로 481%(178가구) 급증했다. ○청약 커트라인도 13점 낮아져청약 인기가 식으면서 당첨 커트라인도 낮아지고 있다. 리얼투데이 집계 결과 올해 전국 청약 당첨 커트라인 평균은 28.61점(해당 지역 기준)이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41.38점보다 13점 가까이 하락한 수준이다.
서울도 ‘로또 청약’ 광풍이 일었던 작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당첨 커트라인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상반기 61.1점을 찍었던 서울 아파트 당첨 커트라인 평균은 작년 하반기 58.8점으로 하락한 데 이어 현재 44.44점까지 떨어졌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신도시 택지지구처럼 분양가가 저렴하거나 교통 호재가 있는 곳이 아니면 청약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식어버린 청약시장 분위기가 단기간에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수년간 집값이 오르면서 분양가도 덩달아 올랐고, 대출 금리 인상으로 무주택 수요자들의 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대구, 충청 등 지방 일부 지역에서 급증하던 미분양 주택이 수도권에서도 나오면서 집값 하락세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