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용산정비창

입력 2022-07-27 00:28
수정 2022-07-27 00:29
용산(龍山)이라는 지명엔 두 가지 설이 있다. 인왕산 자락 끝 봉우리(용산)의 산세가 한강에서 물을 마시는 용을 닮아서 그렇게 지었다는 설(출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곳에서 실제로 용이 하늘로 올랐기 때문이라는 설(증보문헌비고)이다. 어쨌거나 용은 왕을 뜻한다. 그만큼 명당이라는 얘기다. 풍수적으로도 뒤로는 남산, 앞으로 한강을 낀 대표적 ‘배산임수(背山臨水)’지다. 수많은 세도가가 경쟁적으로 묏자리를 썼고, 세금으로 걷힌 쌀과 공납품이 모이는 포구로 크게 발전했다.

이런 뛰어난 입지가 ‘흑역사’의 이유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몽골·청·러시아·일본 등 한반도를 노리는 외세들은 어김없이 이곳에 병참기지를 세웠다. 그러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 통치와 대륙 침탈을 위한 군사기지(용산공원터)와 철도기지(용산정비창터)를 건설했다. 해방 후엔 미군이 수십년간 군기지로 활용했다.

용산은 일제의 부지 활용에 따라 동서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다. 미군기지를 끼고 있던 동부이촌동(이촌1동)은 1970년대부터 대규모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등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최근 대통령실까지 이전하며 명당임을 재차 각인시켰다. 그러나 한강대로 반대편인 서부이촌동(이촌2동) 쪽은 다르다. 처음부터 공영주택 등이 들어선 데다 코레일의 철도정비창 시설 때문에 개발이 더뎠다. 천혜의 입지를 가진 땅이 미개발 상태니 주목받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규모도 역대급이다. 정비창 면적은 여의도공원의 두 배, 서울광장의 40배다. ‘서울 한복판에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이유다.

정치인들이 부지 개발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치적용으로 그만이다. 2008년 당시 민선 4기 서울시장이던 오세훈 현 시장이 30조원짜리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띄웠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도 좌초됐다. 이후에도 국제 업무·상업 복합지구, 또는 대규모 주택 공급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과열 우려 등으로 제대로 추진된 적이 없다.

어제 오 시장이 부지를 용적률 1500% 이상의 초고층이 들어서는 직주(직장과 주거지)복합형 국제업무지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다시 내놨다. 언제나 포부는 원대하다. 결과는 미지수다. 이번엔 용산정비창터에서 용이 날아오르는 걸 볼 수 있을까.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