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3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검은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한 앳된 소년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하지만 소년이 연주를 시작하자 관객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7년 전 금호영재콘서트에서 벌어졌던 충격의 파장은 결국 세계를 뒤덮었다. 18세의 임윤찬이 얼마전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 기록을 세우면서다.
금호문화재단은 한국 클래식 음악의 ‘황금 시대’를 열어젖힌 주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00년 이후 세계적 콩쿠르를 휩쓴 한국 출신 수상자들은 대부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 올해만 해도 상반기 열린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한 한국 음악가 38명 중 30명(78%)이 금호영재·영아티스트 출신이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1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008년 금호 영재),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에 오른 첼리스트 최하영(2006년 금호 영재)이 대표적이다.
금호문화재단은 1977년 금호그룹이 2억원을 출자한 장학재단으로 출발했다. 클래식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1990년 한국 최초의 직업 실내악단 ‘금호현악 4중주단’을 창단했고, 1998년부터 음악 영재 발굴에 적극 나섰다. 연간 60억원의 사업예산 가운데 20억원을 영재 지원 사업에 투입했다. 고(故) 박성용 회장은 무대를 따라다니며 음악가들을 격려했고, 해외 유명 지휘자들이 내한하면 영재들의 만찬 참석과 협연 약속을 받아냈다,
1993년부터 금호악기은행 제도를 운영하며 문화재에 준하는 과다니니 바이올린과 마치니가 제작한 첼로 등을 빌려주고 있다. 45년간 ‘금호 콘서트’는 음악 영재들 등용문이자 사관학교가 됐다. 금호 콘서트가 지금까지 발굴한 음악 영재만 총 1000여 명에 달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