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그 안에 뜨거운 감동이 샘솟는 재난 영화가 탄생했다. 화려한 라인업의 배우들이 펼쳐내는 탄탄한 연기력은 덤이다. 올 여름 극장가를 달굴 영화 '비상선언'이다.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언론배급시사회가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현장에는 한재림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이 참석했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테러로 항공기가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상황 속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의문의 남성이 비행기에 탑승한 이후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간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더 킹'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여 온 한재림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한 감독은 "처음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게 비행기 안에 갇힌 사람들이 재난을 겪게 된다는 거였다. 이걸 기획하고, 제안 받았을 때는 무려 10년 전이었다. 작품을 쓰고 캐스팅을 시작할 때는 재난이 아직 오지 않았던 시기였다. 찍으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특정한 재난이 아닌, 재난 자체의 속성을 더 들여다보면 많은 함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초대형 비행기 세트를 구현해 극한의 사실감을 부여했다는 점은 '비상선언'의 최대 관람 포인트다. 비행기 세트를 360도 회전시킬 짐벌을 완성해 촬영에 투입, 실제 크기의 항공기 세트를 회전시키며 촬영한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사실감 넘치는 장면 하나 하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강력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한 감독은 "재난영화이지만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관객들이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는 접근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적 접근이나, 인물 간 거리두기를 사용하면서 고민한 게 VFX 장면이었다. 어떻게 화려하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다가 세트 안에서 실제로 배우분들이 비행기 회전이나 터뷸런스(난기류)를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희 비행기가 정말 큰데, 해외에서도 그런 크기의 비행기를 돌려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안전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수많은 테스트 끝에 승객 분들이 다행히 한 분도 다치지 않고 잘 끝냈지만 촬영 내내 긴장됐다"고 덧붙였다.
'비상선언'의 또 다른 매력은 항공 재난을 다루면서 동시에 휴머니티에 집중한다는 것. 재난을 마주한 이들 각자의 사연과 감정이 세심하게 그려진다. 한 감독은 "재난이 막상 닥치면 인간은 두렵고, 나약해지고, 남을 비난하고, 원망하기도 한다"며 "위대한 희생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닌, 사소한 인간성에 집중하다보면 그 재난들을 조금씩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털어놨다.
스케일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비주얼을 스크린에 구현해내는 게 한 감독의 몫이었다면, 스토리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책임진다.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테랑 형사팀장 인호 역을 맡아 평범한 가장의 모습과 함께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 속에서 모두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을 연기한 송강호는 "처음에 시나리오는 받았을 때는 그냥 평범한, 우리가 흔히 봐온 재난영화 장르물로 이해했다. 근데 점점 작업을 해나가면서 (느낀 게) 한재림 감독님이 재난을 통해 뭘 이야기하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려는지 어른스럽게 다가간다는 거였다. 기교나 말초적인 표현들을 통해 자극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묵직하게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잘 느끼지 못했던 사회공동체에 대한 이야기, 가족과 이웃 등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담담하게 차근차근 보여주더라. 그 지점이가슴에 와닿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호라는 캐릭터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들, 마음 속에 있는 간절함, 절절함 등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병헌은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지만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른 탑승객 재혁 역을 맡았다. 그는 재혁에 대해 "어떤 일로 인해 비행공포증 트라우마가 생긴 인물"이라면서 "실제로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공황장애를 겪어봤다. 그 느낌과 증상들을 이후로도 여러 번 경험하긴 했다. 그런 게 어느 정도는 표현됐으면 했다"고 밝혔다.
전도연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국토부 장관 숙희 역을 맡아 고뇌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재난 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 나가는 인간적인 리더를 그려낸다. 전도연은 "영화에서 직업적으로 권력자이긴 하지만, 재난 방황 앞에서는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게 그려진다. 보는 내내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남길은 반드시 안전하게 착륙해야 하는 부기장 현수 역으로 분해 재난 상황을 맞닥뜨린 인물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기장님으로 나오신 분들과 같이 훈련했다. 자문해주신 기장님 중에서 영화 '허드슨 강의 기적'이 자기가 봤던 연기 중에 가장 기장 같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큐는 아니지만 진짜 같이 해보고 싶어서 랜딩 시뮬레이션부터 비행기 조종 버튼 등 시스템을 익숙하게 다루는 연습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행기 오락이 있는데 똑같이 조종석을 사서 이륙하고 랜딩하는 걸 연습 삼아 핑계로 놀기도 했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김소진은 위기 상황에도 적극적으로 관객들의 안전을 돕고자 노력하는 기내 사무장 희진 역으로 변신하며, 박해준은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실장 태수 역할로 분한다.
김소진은 "재난이라는 위험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갖게 되는 두려움과 불안함, 나약함이 있는데, 그런 순간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 같다.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존재도 이 영화에서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해준은 "생각보다 멋있게 나오더라. 감독님께 감사하다"며 "즐겁게 촬영했다"고 밝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임시완의 연기 변신이다. 임시완은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공항에 온 승객 진석으로 등장한다. 한 마디로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테러리스트'다. 그간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보여오던 것과는 확 다른 모습. 임시완은 "걱정보다는 기대가 컸던 배역"이라고 했다.
그는 작품을 선택의 기준 중 하나가 캐릭터가 하는 행동의 '당위성'이라면서 "이번 작품은 당위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혹은 아예 그런 당위성 자체가 없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당위성이 없다는 게 이 역할을 표현하기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한 감독은 "이 캐스팅에 영감이 된 건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 사건이었다"면서 "테러범의 기사를 찾아보니 정말 평범했고, 집안도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 친형은 동생이 총기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더라. 전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었으면 했다"고 임시완을 캐스팅한 이유를 밝혔다.
끝으로 '비상선언' 팀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 재난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받아들일 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를 '비상선언'을 통해 느끼셨으면 한다"면서 "트라우마, 상처를 지닌 분들 중엔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더라. 이 작품을 통해 그 이후의 삶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하고, 또 어떻게 이겨내야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상선언'은 오는 8월 3일 개봉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