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정책처의 검토를 거쳐도 제대로 된 비용추계서가 첨부되는 법안은 둘에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비용추계를 할 수 없었던 이유를 담은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가 붙기 때문이다. 법안을 발의하며 비용 추계가 어렵도록 모호한 내용을 담는 의원들도 문제지만, 일부 조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손을 드는 예산정책처의 무성의도 작용한 결과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상반기 제출된 법안 중 예산정책처 검토가 끝난 법안 519건 중 265건에만 비용추계서가 첨부됐다. 49%인 254건의 법안에는 미첨부 사유서만 달렸다.
상당 부분은 법안의 핵심 내용을 시행령이나 대통령령에 위임해 비용 추계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외국인 근로자 연금보험료 부담금의 일부를 정부가 사업자에게 지원하는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지원 대상 사업장의 규모 및 매출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지원 대상 기업의 범위 자체를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인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를 예산정책처가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사례도 많다. 에너지 개별소비세 탄력세율을 70%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법안에 예산정책처는 “구체적인 세율 조정 폭과 기간을 알 수 없다”며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 인하했을 때 1년간 세수 감소’ 등 가정을 달아서라도 첨부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남성 육아휴직 90일 이상 의무화’ 관련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예산정책처는 “휴직기간이 모호하다”며 비용 산출을 거부했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최소 기준인 90일을 근거로 고용보험료 지출 규모를 산출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노경목/맹진규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