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6만t 이상의 구리를 전기로로 녹여 전기자동차 케이블용 구리판을 만드는 동박판 제조 전문 A사는 최근 부쩍 오른 전기요금으로 비상이 걸렸다. 전기료가 올해 70억원으로 작년보다 10% 이상 늘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전기요금이 전체 제조원가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A사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유가 상승과 한전의 누적 적자 확대 등의 영향으로 연내 전기요금이 전년 대비 최대 27% 인상(㎾h당 110원→140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금속가공·주물·열처리·금형 등 ‘뿌리 중소기업’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올해 전기요금 인상분은 ㎾h당 16.8원에 달한다. 현행 전기요금(㎾h당 110원) 대비 15% 이상 늘어난다. 한전은 지난 4월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기준연료비를 ㎾h당 4.9원 올리고, 오는 10월에도 4.9원을 추가 인상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중기업계에 보냈다. 기후환경요금을 ㎾h당 2원을 올리는 것에 더해 연료비 조정단가도 연간 한도치인 5원까지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은 추가로 기준연료비 조정, 연료비 미수금 정산제도 도입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h당 최대 30원 이상 오르면서 산업계 전체적으로 부담이 약 8조원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물업체 대표 B씨는 “한전의 예고처럼 전기요금이 추가 인상될 경우 연간 8억원 이상 부담이 늘어난다”며 “전기료 인상은 영세 중소기업들을 연쇄적으로 쓰러뜨리는 ‘티핑 포인트(급변점)’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기요금 부담은 단순히 생산비용 증가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용 알루미늄 케이스 가공기업 C사 대표는 “전기요금이 지난 3월 1억8000만원에서 오는 10월 2억100만원으로 11.6% 오를 전망”이라며 “수출포장용 박스를 납품하는 회사의 납품단가 인상 요청부터 에어컨이 설치된 함바집(직원식당) 운영 비용 증가까지 연쇄적으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중소기업 전용 요금제 등으로 충격을 줄여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전기요금의 3.7%에 해당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을 면제해주는 중소기업 전용 전기요금제 상시 도입 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중소기업은 유독 전기를 비싸게 쓰고 있다. 대기업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활용해 가격이 저렴한 심야시간대 경부하 요금 전력을 충전해 사용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ESS 설비 투자 여력이 없고 조업시간이 정해져 있어 중간부하 시간대 전력을 주로 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계는 토요일 전기요금을 낮추고, 전기요금이 비싼 여름철과 겨울철 요금으로 분류된 6월과 11월 전기요금을 봄·가을 요금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재 토요일 낮 시간대 요금은 중간부하 요금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이를 경부하 요금으로 낮춰달라는 것이다. 토요일 낮 시간대의 전력망에 가해지는 최대부하가 평일의 중간부하보다 적다는 것이 근거다. 냉·난방 수요가 많은 여름·겨울철 요금은 봄·가을 요금 대비 현재 약 1.5배 비싸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 전용 요금제 도입 등 합리적인 요금 체계 개편과 고효율 기기 교체 지원 확대 등의 조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